
지난 가을 남산에 새로 지은 안중근 기념관을 개관식을 할 때의 일이었다. 의례적으로 단상 주변에 마련해 놓는 귀빈석에 정작 그 건물을 설계한 이의 자리가 없었다. 그래서 개관식에 참석했던 설계자는 한 구석에 밀려서 남의 집 잔치처럼 멀뚱멀뚱해 할 수 밖에 없었다. 뜻이 있는 분들이 문제를 제기했고 그 사실이 신문을 통해서 불거져 나왔다. 이후 건축인의 자리를 찾자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그 이야기를 신문을 통해 들으며 많은 생각들이 머릿속에서 오고갔다. 건축인의 자리가 어디로 갔을까? 이 사회의 문화적인식이 잘못된 것일까? 혹은 주최한 이의 무신경이 낳은 실수일까? 아니면 건축인의 잘못일까? 그러면서 이런 일은 우리가 자초한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과 모두 불평은 하지만 원인에 대해 생각해보고 진지하게 반성하는 사람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지난 10년 혹은 더 이전에 지금의 경제적 거품이 무럭무럭 자라날 때 우리가 무엇을 했던가? 고민 없이 아파트를 찍어내고 PF니 턴키니 온갖 이상한 바람을 허파에 불어넣을 때 우리는 무엇을 했던가? 혹은 사용자의 입장은 고려하지 않은 돈이 많이 들고 비새고 에너지낭비가 심한 자의식 과잉의 건물들을 만든 이는 도대체 누구인가?
이 와중에 건축인의 자리를 찾자고 목소리를 낼 때 제일 앞에 앉아있던 사람들이 그 거품을 만들던 주역들이었다는 사실에 스르르 힘이 빠지고 실소가 나왔다.
몇 년 전 어떤 사람이 화성시의 끄트머리에 집을 한 채 지으려하니 만나서 이야기 좀 하자고 했다. 날씨가 무척 꾸물거리는 여름의 어느 금요일이었는데 나는 일면식도 없는 사람을 전화로 소개받고 대략 지도를 챙겨보고 버스를 몇 번 갈아타고 그 곳까지 오랜 시간을 들여서 갔다. 커다란 저수지를 앞에 두고 있던 몇 개의 단으로 구성된 넓은 땅이었고 집을 짓고자하는 사람은 자신의 희망사항을 소상히 나에게 말했다. 이야기를 다 듣고 내가 어떻게 일을 해야 할지에 대해 이야기를 하려는 순간 집을 지으려는 사람이 나에게 “이건 현상설계입니다. 안을 만들어서 제출해주세요"라고 말했다.
무슨 말인가! 나는 어안이 벙벙해서 되물을 수밖에 없었다.
“주택을, 그것도 사전에 동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현상설계라니요!”
이어서 나오는 말은 더욱 가관이었다. 이미 두 팀이 일을 시작했고 내가 합류하면 세 개의 팀이 안을 제출하고 자신을 그 중 가장 합리적인 안을 결정해서 일을 진행할 것이라는 말이었다. 들을수록 어이가 없었다. 그래서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느냐고 물어봤다.
“파주근처 주택단지에 몇 년 전에 집을 지은 선배가 그러는데 건축인에게 맡기면 돈이 많이 들고 비가 새고, 무엇보다도 자기 맘대로 지어버려서… 몇 명에게 설계안을 받아보고 그 중 가장 나은 안으로 집을 지으라고 조언해주었다"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건축인은 믿을 수 없는 사람이라는 이야기였다. 나는 애써 참으며 그러지 마시고 처음에 일을 시작한 건축인과 잘 상의하고 안을 다듬어서 집을 지으라고 이야기하면 돌아섰다. 그런 나를 그는 이해 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았고 나는 비가 내리기 시작하는 금요일 저녁에 도무지 시간을 예측 할 수 없이 막히는 퇴근길을 뚫고 사무실로 돌아왔다. 사무실로 돌아오는 긴 시간동안 나는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가? 건축에 대해 무지한 건축주가 문제인가 아니면 소통이 되지 않는 건축을 추구한 건축인들이 문제인가? 혹은 당장의 이익에 눈이 어두워서 자존심과 직업의 윤리를 바닥에 깔고 시행사와 건설사의 요구에 맞는 그림을 그려주었던 건축인들이 문제인가? 세상에 우리를 존경해달라고 외친다고 존경이 따라오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아무리 건축은 위대한 일이고 건축을 하는 건축인들은 존경받아야한다고 입으로 떠들고 스스로 자부심을 갖는다고 사회적 존경을 받고 우리에게 위상에 걸맞는 자리를 내어주지는 않는다.
우리는 사실 그 방법을 모두 알고 있다. 다만 실행하지 않을 뿐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대단한 건축적 기술적 성과가 아니다. 스스로 떳떳할 수 있는 자긍심과 아주 초보적 단계의 윤리의식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기본적인 자세를 다시 잡으면 우리는 원하는 대로 존경받을 수 있고 우리가 원하는 자리도 생기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