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도심(原都心), 도시의 원래부터 내려오는 중심지, 한양도성 일대 일명 사대문(四大門) 안, 오늘날 행정구역으로 ‘종로구’가 거기에 해당된다 하겠다. 5년 전 이곳 종로구에 장가를 온 필자는 장가들 즈음 건축사 자격시험에 합격했고 건축사사무소도 이곳에서 개업했다.
굽이굽이 골목길, 날랜 추녀 밑 떡볶이 가게 등 보기에는 낭만적인 요소가 많아서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곳이기는 한데, 낭만 뒤편의 불편함도 많다. 한 예로 겨울이면 월동준비를 철저히 해야 한다. 아파트에 오래도록 거주하신 분들은 잊은 지 오래인 ‘월동준비’. 여기서는 매해 겨울, 누가 부지런하고 게으른가를 평가하는 잣대가 되기도 한다.
필자는 그래도 수년을 이곳에서 보내어 이제 익숙해진 일인데 올여름, 원도심 중에서도 중심인 삼청동으로 동료 건축사가 사무실을 이전하였다. 필자의 사무실과도 지척에 있었다.
잘 지내는가 싶었는데 지난 12월 중순 경에 그로부터 전화가 왔다. 혹한 기간이어서 전날 퇴근할 때 탕비실과 화장실 세면대 수도꼭지를 조금씩 틀어놓았는데 아침에 출근해서 보니 수돗물이 얼어서 고드름이 되어 있다고 하면서 어찌해야 하느냐고 난감해 했다. 하하……. 틀어놓은 수돗물이 얼어서 고드름이 맺혔단다. 그는 또 전에 같이 근무하던 동료 건축사에게 이 일을 말했더니 무슨 80년대에 사느냐고 거짓말 말라고 하면서 믿지 않더라고도 했다. 수도계량기 동파는 예사지만 실내 수도꼭지에 고드름이 맺혔다는 일은 정말 7·80년대 추억 속의 일인 것 같기도 하다. 실내 상수관까지 몽땅 얼어버렸다는 것인데, 에구 듣기만 해도 난감한 일이다. 건물주 아주머니도 처음 있는 일이라면서 난감해하더란다. 그래서 수도계량기가 동파되었을 테니 일단 수도사업소에 연락하여 계량기 교체를 의뢰하고 배관 해동은 지역 설비업체를 찾아서 해빙기를 이용하여 녹여야 한다고 알려주었다.
몇 시간 후 어찌 되었나 궁금해서 가보았다. 계량기는 교체되었고, 지역 설비업체가 해빙기를 가지고 해동하고 있었다. 동료 건축사는 “종로 입성 신고식 크게 합니다”하면서 아침에 난감해하던 목소리와는 다르게 여유가 있어 보여서 다행이다 싶었다. 그에게 덧붙여서 종로는 구옥들이 많아서 벽이 있다고 단열이 되겠거니 단순하게 생각하다가는 큰코다친다는 것과 요즘 좋은 품질을 갖는 이동식 라디에이터가 많으니 두어 개 사다가 화장실과 실내에 틀어놓아야 동파를 방지할 수 있다고 말해 주었다. 그는 고맙다며 다음에 식사하자고 했다. 말 몇 마디 해주고 밥 얻어먹을 약속이 생겼다. 허참! 늘 이렇게 쉽게 밥 벌어먹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한양 읍성’ 그리고 식민지 시대엔 ‘경성’의 이름을 가졌던 이곳엔 모던보이가 거닐었다. 한국전쟁에도 급속히 복구되어 급성장을 이루던 도심은 팽창하는 인구와 인프라를 감당할 수 없어 70년대에 강남이 개발되었다. 그리고서 ‘도심’은 ‘원도심’ 혹은 ‘구도심’이라 불리었고, 반듯한 도로에 신식 건물들로 시작된 강남은 ‘신도심’이라 불렸다. 이제 ‘모던보이’는 ‘포스트모던 보이’가 되어 강남을 거닌다. 원도심은 역사와 낭만은 있을지라도 인프라가 낙후되어 직접 거주하려면 적지 않은 투자와 인내가 필요하다. 그러기에 함부로 거주할 수 있는 곳은 아닐 수 있으니 꼭 문의 후 거주하시기 바란다. 필자에게 문의 주시면 성실히 안내하여 드리겠다. (참고로 필자는 공인중개사 자격도 있고 현업으로 뛰고 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와 여러 많은 지인들, 많은 동료 건축사들은 원도심을 좋아한다. 어느 골목길, 작은 커피숍에서 만나 담소를 나누고, 구불구불 골목길을 돌아 식사를 하러 간다. 높든 낮든 언덕도 있어서 걷는 것이 다이내믹(dynamic) 하다.
수도꼭지에 고드름이 맺히는 것도 너그럽게 보면 낭만일 수 있겠다. 이러한 원도심에 다시금 많은 인구가 모여 살면 좋겠다는 새해 소망을 가져 본다. 그리고 우리 모든 건축사분들, 무거웠던 작년 한 해는 훠이훠이 날려 잊으시고 올해는 기쁨만이 충만하기를 또 평안하시기를 기원드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