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타 분야처럼 건축 역시 수많은 상들이 존재한다. 태생과 이유도 제각각이다. 그런데, 한마디로 대한민국 건축을 대표할 만한 권위 있는 상을 만장일치로 선창할 수 없다. 대부분의 국가들에서 건축상 제도가 있고, 매년 다양하게 수상하고 있지만, 국제적 권위를 인정받는 경우 역시 드물다. 그런 정점에는 하얏트 재단에서 만든 프리츠커 상이 있다. 노벨상처럼 특정인의 개인적 사회적 책임감에서 시작된 기부에 의한 상이다.
신기한 것이 이런 민간에서 시작된 상들이 대체로 국가보다 권위 있는 경우가 종종 있다. 아마도 국가가 수상할 경우 정치적 역학관계 등이 맞물려서 그 분야의 본질적 내용이 아닌 경우가 주목받아서 그럴 것이다. 국내에서도 이런 경우가 종종 있다. 대표적인 분야가 대중예술 분야이다.
그렇다면 상이란 것이 왜 필요하고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이런 기초적 질문에서 우리나라 건축상에 대한 가치와 의미를 찾아볼 수 있다. 모든 상은 그 분야에서 노력하고 공헌한 사람 또는 작품에 대한 사회적 인정이 본질이다. 영화의 경우는 그해의 영화에 대한 모든 영화인들이 인정할만한 것에 대해 박수치고 인식이라는 보상을 해주는 것이다. 그 인식이 그리 대단한 경제적 보상도 아니다. 지난해 영화 <기생충>이 미국 영화상이라는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하고, 프랑스 영화상인 칸 영화제 작품상을 수상했다. 사실 미국 아카데미 영화상은 미국의 영화상일 뿐인데, 그 파급력은 세계적이다.
기생충은 세계적인 영화제로 인정받는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과 미국 아카데미 영화 작품상 수상으로 순식간에 세계적 영화로 인정받았다. 봉준호 감독은 이들 상의 수상으로 영화 분야에 대한 그의 가치와 능력이 확실하게 검증되는 순간을 맞았고, 동시에 우리나라 영화 전반도 해외로부터 주목받는 계기가 되었다. 이렇듯 권위를 인정받는 상은 대단한 영향력이 있다. 그러나 실제 아카데미상의 경우 상금 없이 트로피 하나로 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을 수상한 이후 엄청난 부가가치가 따른다. 그것이 권위의 힘이다.
새삼 이런 상에 대한 장황한 언급을 하는 이유는 대한민국 건축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는 중요한 시그널과 역할을 건축상이라는 과정이 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근현대 건축이 본격적으로 우리나라에 도입된 지 백년이 안 된 지금, 여전히 건축의 위상은 모자란다. 건설과 건축이 엄연히 다른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건설의 부속처럼 여겨지는 사회적 분위기다. 사회적 분위기뿐만 아니라 국토부 자체의 행정부 인식도 크게 다르지 않다. 입법부인 국회 또한 마찬가지다. 이는 대한민국 건축의 현재다. 수많은 건축인들의 노력과 토로에도 불구하고, 더불어 수많은 건축사들의 대중매체 인터뷰에도 불구하고 건축은 값싼 구조물의 건물로만 치부하는 경우가 대중적 인식이다.
이런 사회적 인식을 타파하고자 만들어진 수많은 건축상들이 있으나, 어느 것 하나 확실한 인정과 권위를 확보하고 있지 않다. 이런 흐름에서 대한건축사협회가 국토교통부와 공동 주최하고 있는 한국건축문화대상이 존재한다. 1992년 건설부에서 제정된 한국건축문화대상은 1994년부터 대한건축사협회가 그간 해오던 ‘한국건축전’과 통합하면서 진행해왔다.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점차 그 상의 개방성과 객관적 노력이 인정받으면서 매해 참가 신청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 특히 젊은 건축사들의 참가 신청이 늘어나고 있음은 고무적이다.
다만 한가지 옥에 티가 되는 것은 공동주거 부분의 대통령상 등 일부 내용의 변경이 요구된다는 점이다. 공동주거를 아파트로 제한하는 방식은 좀 더 다양한 주거를 지원해야 하는 국가적 상의 범위를 축소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통령상과 국무총리상이 규정되어 있는 만큼, 최소한 국무총리의 직접 수상 정도를 2021년에는 기대해 본다. 때로는 형식이 내용을 보완하거나 강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