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것을 소중히 지켜나가는 마을, 담장 따라 걷다보면 세월 느껴져

전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당
아산 공세리성당(牙山 貢稅里聖堂)은 충청남도 아산시 인주면에 있는 조선 시대의 로마 가톨릭 성당이다. 아산만과 삽교천을 잇는 공세리 언덕 위에 본당·사제당·피정의 집·회합실 등의 건물이 있고 병인박해 때 순교한 3인의 묘가 조성되어 있다. 본당은 1층 적벽돌 건물로, 정면에는 높은 첨탑이 있고, 내부에는 무지개 모양의 회색 천장이 마련되어 있다. 사제관은 2층 벽돌 건물로, 정면이 팔자(八)계단으로 2층을 오르게 되어있으며, 계단 아래에 1층 입구를 두었다.

초기에 선교사들이 포구에 상륙하여 선교를 시작한 곳으로 1894년 교회를 설립하였고, 1897년에 사제관을 세웠으며, 1922년 연와조 고딕 양식의 근대식 성당을 완성하였다. 한국전쟁 중에 인민군에게 점거당해 공회당으로 쓰이기도 했던 성당은 1970년 신자가 증가하자 북측의 제대 쪽을 헐어내고 317제곱미터를 증축해 495제곱미터로 늘려 오늘에 이른다. 공세리 성당은 천주교 초기 순교성당이라는 종교적 가치도 훌륭하지만 소박한 정신과 우아한 건축적 아름다움이 뛰어나다. 수백 년 된 나무로 둘러싸여 있어 주위 경관이 매우 아름다운 천주교의 성지라 할 수 있다.

1998년 7월 28일 충청남도의 기념물 제144호로 지정되었다. 공세리 성당은 1890년대에 시작된 오래된 역사를 자랑하는 유서 깊은 성당으로서 1998년 충청남도 기념물 144호로 지정되었으며, 2005년도에 한국관광공사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가장 아름다운 성당으로 선정된 성당이기도 하다. 350년이 넘는 국가 보호수가 4그루나 있고 그에 버금가는 오래된 거목들이 성당의 아름다움을 더해주고 있으며, 보는 지점마다 또 각 계절마다 다른 독특한 성당만의 매력을 지니고 있다. 뽀족한 탑과 높은 천장이 눈에 띄는 전형적인 고딕양식의 건축물은 멀리서 보아도 고풍스럽고 웅장하다.

순교성지와 성지박물관
공세리 성당은 천주교 신앙을 위해서 목숨을 바친 수많은 순교자들을 모시고 있는 중요한 성지이기도 하다. 한국 천주교회는 4대 박해(신유, 기해, 병오, 병인)를 통해 만 여 명의 순교자를 낳게 되는데 그 대부분이 내포지방에서 나왔다. 현재 이 지역에서 신앙생활을 하다가 순교한 32인의 순교자들을 모시고 있다. 특히 박해시대 때 내포지방은 천주교 신앙의 요충지로서 수많은 천주교 신자들이 이곳에서 잡혀 전국 각지로 끌려가서 순교를 하였는데 이곳은 내포지방이 시작되는 입구로서 해상과 육로를 연결하는 중요한 포구였다. 경내에 초창기 순교자의 묘소가 있으며, 성당 주위를 도는 십자가의 길 14처 코스가 있다. 공세리 성당은 인근 당진의 솔뫼성지와 신리성지, 예산의 여서울성지, 홍성의 홍주성지, 서산의 해미성지와 함께 천주교 순례길의 성지다. 공세리 성당에서 솔뫼성지를 잇는 길이 천주교 순례길을 여는 첫 구간이다.

공세리 성지 성당 박물관은 도지정문화재 144호인 구사제관을 개보수하여 사용하고 있으며, 1,500여점의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한국 천주교회의 태동에서부터 내포지방을 중심으로 한 초대 교회의 생활모습과 신유-병인박해 때의 순교자들, 한국전쟁 당시 순교한 성직자들의 활동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며, 공세리 성당을 설립한 에밀 드비즈 신부의 유품과 이명래 고약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박물관은 매주 월요일 휴관이며 관람료는 무료이다.

역사의 유적지와 문화 창작의 장소
공세리 성당이 위치한 넓은 부지는 예로부터 충청도 일대에서 거두어들인 세곡을 저장하던 공세 창고가 있던 공세곳 창고지로서 조선조 성종9년(1478년)에 이곳에 세곡 해운창을 설치 운영해 왔다. 최초에는 창고가 없이 노적하였으나 중종 18년(1523년)에 80칸의 창고를 짓고 영조 38년(1762년)에 폐창이 될 때까지 근 300년 동안 운영되었던 공세창고였다.

성당은 영화와 드라마 촬영 장소로 각광을 받고 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현재까지 70여 편이 넘는 유명한 영화, 드라마가 촬영되었고, 현재도 계속해서 촬영지로 각광받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대표작으로는 ‘태극기 휘날리며’, ‘수녀 아가다’, ‘사랑과 야망’, ‘에덴의 동쪽’ 등이 있다.

처음 고약을 개발 보급한 곳
한때 상처와 종기에 고약만한 약이 없었다. 그 고약이 맨 처음 만들어 보급된 곳이 바로 공세리 성당이다. 1895년에 이곳이 부임한 에밀 드비즈(한국명 성일론.成一論) 신부가 프랑스에서 배우고 익힌 방법으로 원료를 구입해 고약을 만들어 무료로 나누어 주었다. 그 비법을 당시 에밀 드비즈 신부를 도와 주었던 이명래(요한)에게 전수하여 ‘이명래 고약’이라는 이름으로 전국적으로 보급됐다.

자료=공세리성당. http://www.gongseri.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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