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화로운 짜임새의 미학, 국보 제18호 무량수전

신라의 불교는 눌지왕 때에 들어와 법흥왕 때 수용된 뒤 크게 발전했다. 중국을 통하여 전입된 교학 불교는 신라 불교로 하여금 종파성을 띠게 하였는데 가장 특징적으로 운위되는 종파는 화엄종과 법상종이다. 그 가운데에서도 전법사실이 뚜렷하고 종찰이 확실한 것은 의상의 화엄종이다. 
부석사는 우리나라 화엄종의 본찰로 초조인 의상 이래 그 전법 제자들에 의해 지켜져 온 중요한 사찰이다. 부석사의 생김을 정리한 역사적 기록물은 거의 남아 있지 않고 비석에 쓰인 몇 문자나 절을 재건한 기록. 보수한 기록 등이 전해진다.
안양루는 무량수전 앞마당 끝에 위치한 누각이다. 규모는 정면 3칸, 측면 2칸이며 팔작지붕 건물이다. 건물의 위쪽, 아래쪽 편액이 다르다. 난간 아랫부분 편액은 ‘안양문’, 위층 마당 쪽은 ‘안양루’라고 씌어 있다. 누각 내부에 시문 현판이 담겨 있다. 2층 공포와 공포 사이로, 여러 개의 금색불상이 가부좌를 틀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국보 제18호 무량수전의 미학
무량수전은 정면 5칸. 측면 3칸 규모인데, 평면의 경우 건물 내부 고주 사이에 형성된 내진 사방에 한 칸의 외진을 두른 형식을 취한다. 지붕은 팔작 형식인데 지붕의 물매는 후대 건물에 비해 완만하다. 이 집은 소위 9량집으로 외목을 제외한 도리가 9개나 되는 큰 건물이다. 면석과 갑석을 짜 맞춰 만든 가구식 기단과 사갑석을 받치는 지대석이 돌출된 계단. 원형 주좌와 고막이를 가진 초석의 법식은 전형적인 통일신라의 기법을 계승한 것이다. 계단 동측면에 선각된 ‘충원적화면(忠原赤花面) 석수김애선’이라는 기록으로 미루어 고려시대 작품임을 알 수 있다.

고려시대 법식을 거의 완벽하게 보여 주지만 그 가운데 가장 유의해 볼 부분은 평면의 안허리곡(曲)‚ 기둥의 안쏠림과 귀솟음‚ 배흘림‚ 항아리형 보 등의 의장 수법이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눈에 잘 띄지 않지만 착시에 의한 왜곡 현상을 막는 동시에 가장 효율적인 구조를 위해 고안된 고도의 기법들이다. 안허리곡은 보통 건물 중앙보다 귀부분의 처마 끝이 더 튀어나오도록 처리한 것으로 기둥의 안쏠림과 관계가 있다. 안쏠림은 기둥 위쪽을 내부로 경사지게 세운 것이다. 무량수전에서는 안허리곡과 안쏠림이 공포와 벽면에까지 적용돼 마치 평면이 오목거울처럼 휘어 있다. 귀솟음은 건물 귀부분의 기둥 높이를 중앙보다 높게 처리하는 것인데 수평 부재의 끝부분이 아래로 처져 보이는 착시를 막아준다. 기둥의 배흘림 역시 기둥머리가 넓어 보이는 착시 현상을 막기 위한 것인데, 무량수전의 기둥은 강릉 객사문 다음으로 배흘림이 심하다. 

무량수전의 공포 형식은 기둥 위에만 배치된 소위 주심포계인데, 매우 건실하게 짜여졌다. 주두 위에서 공포의 짜임이 시작되고 벽면 방향의 첨차와 튀어나온 제공의 길이가 같은, 전형적인 벽면 방향의 첨차와 튀어나온 제공의 길이가 같은 전형적인 북방계통의 수법이다. 주두와 소로는 내반된 곡선의 굽을 가지고 있다. 

또한 공포 사이 포벽에 뜬 소로를 가지고 있는 점은 이 집만의 특징이다. 무량수전 정면 중앙 칸에 걸린 편액은 고려 공민왕의 글씨다. 내부 서쪽에는 불단과 화려한 닫집을 만들어 고려시대에 조성한 소조 아미타여래 좌상(국보 제45호)를 모셨다. 협시보살 없이 독존으로만 동향하도록 모신 점이 특이한데 교리를 철저히 따른 관념적인 구상이라 하겠다. 그렇지만 불상을 동향으로 배치하고 내부의 열주를 통하여 이를 바라보도록 함으로써 일반적인 불전에서는 느낄 수 없는 장엄하고 깊이감 있는 공간이 만들어졌다. 일반적으로 진입하는 정면 쪽으로 불상을 모시는 우리나라 전통 건축에서는 드문 해결 방식이다.

대들보 위쪽으로는 후대 건물과는 달리 천장을 막지 않아 지붕 가구가 잘 보인다. 굵고 가늘고 길고 짧은 각각의 부재들이 서로 조화 있게 짜 맞춰진 모습은 오랫동안 바라보아도 싫증이 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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