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94세 현역 여의사 한원주 씨의 죽음을 다룬 기사를 보았다. 언젠가 tv영상으로 보았던 기억이 있는 분이라 제목만 보고 지나칠 수 없었다. 그녀는 매그너스 요양병원에서 국내 최고령 여의사로, 마지막까지 동료 노인들을 돌보다 별세했다. 잠시 상념에 잠기게 하는 뉴스였다.
내가 하고 있는 이 일의 끝을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뭔지 모를 막연함으로 죽을 때까지 건축 관련 일을 하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 뭔가에 대해선 생각해본 적이 없다.
건축학과를 졸업해서 건축업무를 시작하고 지금까지 출산 때를 제외하곤 한번도 쉬지 않고 업무를 해왔는데, 50세 즈음에 다다른 난 아직도 나의 색을 정의하지 못하고 있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뭔가? 나는 어떤 설계를 하고 싶은 걸까? 내가 어떤 디자인을 좋아하는지, 어떤 건축주를 선호하는지,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어느 날 내 아이가 ‘엄마는 어떤 노래 좋아해? 어떤 가수가 좋아?’하고 물었을 때, 그때 비로소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난 누구지? 왜 이 일을 하는 거지? 누구를 위해? 그런 와중에 열심히 일하는 후배 건축사들이 하나, 둘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난, 내가 어리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세월에 밀려 저쯤 어딘가 선배 건축사로 올라와 있었다. 아무것도 만든 것이 없는데 말이다.
책상 앞에서 열심히 도면만 그리고, 내역 작업하고, 공모전 하고, 시간에 쫓기고, 발주처에 시달리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해야 할 일이? 이것이 전부는 아닐 텐데……. 사실 이런 생각을 해볼 겨를도 없이 지금까지 살아온 것이다. 워커홀릭에 걸린 듯 말이다.
그리고, 우리 아이가 건축을 시작하려 하고 있다. 해서 또 고민을 해본다. 이제 난 무엇을 해야 할까? 우리 아이가 걷게 될 건축의 길에 선배 건축사로서 전문기술을 가진 일원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어떤 것들이 있을까? 그 후배들에게 어떤 미래를 보여주어야 할까?
주말 오후 난 지금도 사무소에서 다음 주에 있을 여러 건의 미팅을 준비하기 위해 이것저것 뒤적이고 있다. 문득 안 되겠다, 싶은 생각이 든다. 일만 하는 엄마, 얼마나 재미없는 직업인가? 나가야겠다. 밖으로 저 밖에 뭔가, 재밌는 인생을 위한 다른 것이 있을 것 같다.
건축 아닌 곳에서 건축을 바라볼 기회들이 많이 있는데 이것들을 간과하고 있었다. 2020 늦은 가을의 문턱에서 그런 생각을 해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