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건축사는 다른 전문 분야에 비해 그 준비기간이 길고 공부양이 많으며 일의 강도가 곱절이상은 힘들다. 또한 일명 ‘士’자 전문직 중 최하위의 보수를 자랑(?)하고 있다. 아니 ‘士’자 전문직이 아닌 4년제 대학을 나온 일반 회사원의 차원에서 비교하더라도 참으로 못 난 급여수준이다. 그렇다면 우리 건축사들은 왜 이토록 열악한 여건에도 불구하고 이 일에 매달리고 있는가? 배운 도둑질이 이것뿐이라? 이는 사회적 인정여부를 떠나 스스로 느끼고 안위하는 Designer로서의 자긍심과 자존감 때문일 것이다. 적어도 필자는 그렇다.
그러나 이러한 건축사의 자존감에 반해 건축설계에 대한 일반인들의 인식은 신통치 않다. 비단 건축주나 건축설계 관련분야 종사자들도 예외는 아닌 듯싶다. 마치 건축설계가 뭐 별거냐는 듯 건축사를 가르치려 하는 사람도 있고, 설계에 뭐가 특별히 들어가는 것이 있느냐는 식으로 비용에 대해 인색한 사람도 있고, 누구나 침범할 수 있는 영역인 듯 쉽게 생각하여 건축 디자인을 하고자 하는 사람도 흔히 접할 수 있다. 마치 건축설계가 디자인이란 분야의 동네북인 것 마냥. 그러나 타인에 의한 건축가치하락보다 더 무서운 건 건축사들 간의 제 살 깎기식의 경쟁을 통한 울지도 못 할 상황의 발생이다.
타인은 웃으며 일을 의뢰하고 건축사는 울며 설계비용을 받는다
올 초의 일이다. 지인의 소개로 모 업체의 임원을 만났다. 그는 자신이 매우 합리적이며 정의로운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좀 어색하긴 하지만 분명 어투에는 호탕함이 보였다. 그리고 얼마 뒤 정의로움과 호탕함을 내세운 그 임원이 다니는 회사와 경쟁입찰에 참가하게 되었다. 필자는 혹여 일이 달아날까 싶어 소심한 금액으로 견적서를 제출하였다. 설계견적서를 제출한 뒤 임원 왈 “설계비용은 경쟁사의 설계업체와 비교하여 합리적인 수준에서 차차 협의하자”고 하였다. 별 이의 없이 동의하였다. 상대편의 정의를 믿으며. 그리고는 입찰일이 지났고 실무상의 일이 마무리되었다. 그는 필자에게 견적서의 50%도 안 되는 금액이 협의(?)금액임을 통보하였다. 아차! 배는 이미 떠났다. 이런 경우 화가 나지만 울며 겨자 먹기로 별 수 없다.
그 후 계약 시 더 황당한 일이 발생했다. 실무담당 왈 “계약금액은 협의금액에서 프로젝트 관리비 10%를 제한 금액”이라는 것이었다. 이해할 수 없었다. 필자는 즉시 실무담당책임자에게 연락하였다. 실무담당책임자 왈 “그 회사는 항상 그렇게 해 왔고 이런 것은 일반적인 경우에 해당되며 이렇게 문의하는 경우는 처음”이라며 불쾌감을 그대로 드러냈다. 필자는 회사 간의 계약관계는 평등한 계약관계이므로 애초 설명에도 없었던 내용은 수용하기 어렵다고 항의하였다. 그러나 이 경우 필자가 할 수 있는 일은 기도밖에 없었다. ‘주님은 저의 마음을 아시오니 주님의 뜻대로 이 일을 처리하여 주옵소서!’
우리 건축사들은 대부분 불평등한 계약관계에 놓이기 전까지 상대편의 정의를 믿는다. 필자 또한 그렇다. 그러나 이러한 믿음이 간혹 손해를 준다. 그렇다고 매사를 의심의 눈초리로 볼 수도 없지 않은가.
건축사들 간의 살기위한 몸부림은 어느 선까지 용납될 수 있는 것인가?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엔지니어링사와 함께 참여한 경쟁입찰에서 당선하여 실시설계를 하게 되었다. 그런데 상대사에서 제시한 실시설계비용이 상대사의 사정상 기본설계비용과 동일하니 맞춰달라는 것이었다. 필자는 절충하자고 했다. 얼마 후 상대사로부터 기본설계비용과 동일한 비용으로 하겠다는 건축사사무소가 있다고, 어떻게 하겠느냐고 문의가 왔다. 필자는 당연히 포기하였다.
그러나 이런 부조리한 경우들은 끝까지 당당하게 성립될 수 없는가 보다. 결론적으로 전자이야기의 경우 상대회사로부터 10%를 감하지 않겠다는 연락이 왔고 후자이야기의 경우 관공서입찰에서 건축사사무소를 변경할 수 없으니 금액을 올려 실시설계를 맡아달라는 연락이 왔다. 동시에 후발 건축사가 한 달 보름가량 한 일에 대하여 보상을 해 주면 안 되겠느냐는 사정 아닌 사정과 함께. 필자에게는 죽은 줄 알았던 자식이 절름발이가 되어 돌아온 셈이다.
건축사의 자존감을 스스로 지킬 수 있는 경제상황을 위해 함께 애써보자
전자이야기는 건축사가 아닌 타인에 의해 건축설계비가 나락으로 떨어지는 경우이고 후자이야기는 우리 건축사들이 스스로 설계비를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경우이다. 필자는 전자도 나쁜 경우지만 후자의 경우가 더 마음 아프다. 이는 디자인이라는 무한의 경쟁상황과는 다른 상황이다. 오죽 일이 없었으면 빤한 손실을 알면서도 동료의 살을 깎고 결국 제 살까지 깎게 되었겠는가. 본인도 얼마나 가슴이 아플 것인가? 왜 이렇게까지 되었는가? 그러나 가슴앓이만 하고 있을 수는 없는 터. 우리 건축사들이여! 건축사의 자긍심과 자존감을 지킬 수 있는 건축사의 경제수준을 향해 어떻게든 달려가 보자. 비록 방법 찾기가 어렵더라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