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식 건축사
박성식 건축사

우리나라 건설업의 사고사망자는 한해에 400명 이상으로 산업재해 사고사망자의 50% 이상을 차지하며 이천 물류창고 화재로 38명이 목숨을 잃는 등 후진국형 인재가 끊이질 않고 있다. 국회에 발의된 건설안전특별법안은 이를 예방하기 위해 발주자에게 적정한 공사비용과 공사기간을 제공하는 한편, 건설공사에 주체별로 책임을 부여하고 원수급인이 안전관리에 책임지도록 해 안전한 작업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제안됐다고 한다. 

주요 내용의 일부를 간략하게 보면 안전관리의무를 소홀히 하여 사람을 사망에 이르게 할 경우 건설사업자, 건설기술용역사업자, 건축사에게는 1년 이하의 영업정지, 자격정지, 매출액에 비례하는 과징금을 부과한다. 발주자, 설계자, 시공자, 감리자에게는 7년 이하의 징역, 1억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제11조(설계자의 안전관리의무)에는 설계자가 공사기간과 공사비용을 산정하고 건설사고 예방에 필요한 가설구조물과 안전시설물 등을 설계도서에 반영하여야 한다는 내용이 있다.

통상적으로 건축공사의 공사기간은 발주자의 요청과 현장 여건을 고려하여 발주자와 시공자 간의 상호협의에 의하여 산정된다. 공사비용 산정 또한 설계자는 수량 산출과 공시된 적정단가를 기준으로 내역서를 제공할 뿐이다. 시공자의 역량, 발주자 예산 등에 의해 협의·결정되어 공사도급계약서의 공식문서로 첨부돼 공사가 진행되어 왔다. 발의자들은 설계자가 공사기간과 공사비용을 산정하면 안전한 현장이 구현된다는 허무맹랑한 공상을 법안으로 현실화했다.

또한 제17조(감리자의 안전관리의무)에서 감리자가 안전한 작업환경을 갖추고 작업하도록 수급인에게 알리고 안전관련사항을 준수하는지 확인하고 통보하여야 한다는 내용마저 감리자가 상주하여야만 지켜질 수 있는 내용이다. 발의자들이 상주, 비상주감리의 차이를 모르는 것이 아닌가 의심하게 한다.

발의된 법안이 주목한 건설현장의 안전사고 문제는 건설전문가가 아니더라도 국민 모두가 잘 알고 있다. 문제를 개선할 법을 만들어 규제를 가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국회가 할 일이다. 그러나 이번에 발의된 법안의 내용은 선진국이라 자평하는 현재 대한민국의 위상에 걸맞지 않는 수준 이하의 법안이다. 국회 발의자들은 조금 더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여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법안을 발의했어야만 했다. 한번 만들어진 법은 돌이킬 수 없으며 새로운 개정안이 나올 때까지는 악법도 법이므로 선의의 피해자를 양산할 수 있음을 간과하여서는 안 된다.

본 법안은 원인자가 명확하지 않은 현장의 다양한 사고를 부실시공이라 단정하고 비당사자인 설계자와 감리자를 무책임한 방관자로 정의하며 처벌을 가하겠다고 하는 것으로 보인다. 무고한 시민을 시위현장에 있었다고 해서 무작정 끌고 가 범죄자를 만들었던 암울했던 시대의 나쁜 기억이 떠오른다. 내용을 분석해 볼수록 이 법안이야말로 구시대적인 탁상행정의 흉물이 아니겠나. 과거 수십 년 동안 건설전문가들의 국가발전을 위한 노력과 부실에 대한 자정 노력은 온데간데없다. 과거로부터 이어져온 부정적인 인식을 더욱더 부풀려 악의적인 법안을 발의하면서 성과주의에 얽매여 설계자, 감리자와 관련 종사자들을 중범죄자로 만들어 뒤늦게 그 과오를 깨닫고 자기반성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설계자는 건축법, 기타 법 규정에 맞추어 관련 전문 기술자들과의 협업을 통해 설계하고 지자체의 인허가 과정 등 여러 번의 검증을 통과하여 성과물을 만든다. 착공 후 현장에서 시공자는 검증된 공사용 도서를 바탕으로 감리자와 협력하여 안전하게 양질의 건축물을 만들면 된다.

건설이라는 예측하기 힘든 상황이 상시 발생되는 산업의 특성을 이해하고 혁신을 추구하는 종사자들의 노력을 무시하고, 사고가 나면 무조건 처벌한다는 단순논리의 법으로 사고 없는 작업환경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니 어이가 없다. 과거에도 현재에도 건축물의 설계와 감리는 공공의 성격이 강하여 징계의 판단과정에서 양형을 판단하는 주체에 과도한 기준이 적용되고 있음을 국회 발의자들은 깨닫길 바란다. 모든 법을 국가의 발전과 국민의 행복을 위하여 미래에 요구되는 사항을 취합하여 시행하도록 다시 한번 강력하게 요청한다.

더불어 우리 대한민국의 건축사도 건축사법의 목적인 건축물과 공간 환경의 질적 향상을 도모하고 건축문화 발전에 이바지해야 한다. 국가와 국민의 안전을 위해 정진하며 더욱 더 노력하여야 할 것이다.

저작권자 © 대한건축사협회 건축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