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나 의사 등 대부분 전문 면허 또는 자격자들의 활동은 기본적으로 개인에서 출발한다. 전문가로서 개인은 책임을 반드시 동반하며, 본인의 역할을 사회적으로 공인받으면서 전문 영역에 대한 권위자로 활동한다. 건축사 또한 마찬가지다. 그리고 이런 개인 전문가들은 시대가 변하고 조직화되면서 공동의 구심체로 사회적 관계가 정리·협상된다. 산업화에 따라 우리나라 전문 자격·면허가 하나둘 만들어지면서, 자발적으로 때로는 정부주도로 조직화되었다. 각종 전문 단체들은 법적으로 지위를 보장받고 동시에 국가·사회가 해야 할 협상을 대행하고 때로는 자격자들의 권리를 확보하는 역할을 했다. 사회적 책임감과 의무감 역시 이런 관계에서 발언되고 전달되면서 사회와 함께 했다.
90년대 민주적 사회 체제가 들어서면서 조직 내 분열로 의무가입이 일시적으로 해제되었다. 이후 대부분의 전문가 집단들은 다시 의무가입이 환원되었다. 그러나 건축사협회는 의무가입이 해제된 이후 환원되지 않고 선택적 가입으로 20년 이상 운영되고 있다. 그러는 사이 건축사의 위상과 역할은 약화되기 시작했다. 물론 건축사협회의 각성과 반성이 절실히 필요했고, 그런 성과 중 하나가 대한건축사협회 회장의 직선제 선거다. 오래전에 진행되었어야 할 직선제는 이제 겨우 2회째로 현재 3번째 선거를 앞두고 있다.
겨우 2회의 직선제 선거를 치루는 사이에 건축사협회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고, 건축사들을 위한 실질적인 제도 개선들을 시도해왔다. 그중 핵심이 의무가입이다. 의무가입은 법제화되어야 가능하므로 국회와 정부, 그리고 학계 및 건축 관계 여러 조직들의 이해 조정 과정이 있어야 시행될 수 있다. 문제는 이런 이해 조정이 아무 때나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국회는 국회대로, 정부는 정부대로 각 입장에 따라 의무가입을 거부하는 경우가 많다.
의무가입이 건축사에게 가장 절실하고 필요한 제도라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러나 현재 법적 의무가입이 정의되어 있지 않다 보니 대한건축사협회의 국회 협상력이나 대정부 협상력이 매우 약한 실정이다. 그러다 보니 행정부의 일방적 독주가 수시로 이뤄지고 있고, 로비력이 강한 유사 분야의 압력에 건축사 관련 업권이 휘둘리거나 흔들리고 있다. 당장 지난 십수년 간 법제화되고, 정책으로 집행된 수많은 사례들을 보면 건축사에 불리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단지 직업적으로 불리한 것이 아니라, 동네북처럼 만만한 대상으로 다뤄지고 있는 것이다. 설계비나 실질적 건축사 업무대가는 여전히 꿈쩍도 하지 않고, 행정부나 국회는 건축 관계자들의 합의 등을 핑계로 대고 있다.
최근 건설안전특별법안이 논란이 되었다. 건설 현장의 안전사고에 시공자의 책임보다 설계자 책임을 강조하는 황당한 내용이다. 반드시 이 법은 수정되고, 건축사에 대해서 일체의 시공 관련 책임을 물어서는 안 된다. 이런 과정을 보면 협회의 절실한 협상력이 필요한데, 현재의 선택적 조직으로는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의무가입이 선택적으로 바뀐 이후 수도 없이 여러 건축사들이 추진하고, 요구했다. 매번 여러 가지 이유로 무산되었던 의무가입에 대한 공이 완전히 대한건축사협회로 넘어왔다. 이제 전국 건축사들이 의무가입을 위한 내부적 환경을 구축하고 만들어야 한다. 건축사를 단일 조직으로 구축하는 의무가입은 건축사의 역할과 권리, 그리고 위상을 높일 수 있는 첫 단추다. 다만 만능 열쇠가 아니라 단지 문을 여는 시작일 뿐이다. 문을 열고 들어가서 정리하고 다듬어야 한다.
만약 이번에 의무가입을 성사시키지 못한다면 앞으로 영원히 의무가입의 기회와 환경은 만들어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수도 없이 많은 조직으로 분열의 기회가 될지도 모른다. 지금도 건축사들의 권익을 한 목소리로 주장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의무가입이 무산된 이후에는 어떻게 될지 암담하다. 어렵사리 국토부와 국회가 인정하고 공을 건축사들에게 넘긴 만큼, 대한건축사협회의 모든 건축사들은 의무가입의 성공을 위해 행동해야 한다. 그것만이 건축사의 미래를 시작하는 첫 걸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