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모여서 하나의 집단이 형성되면 어떤 목적을 위해 역할을 나누게 된다. 우리가 사는 사회에는 많은 직업이 있고 각자의 역할이 있다. ‘건축사의 역할’은 건축주가 요구하는 건축물을 설계하고 감리하는 일일 것이다. 그런데 좀 더 범위를 확장하여 ‘건축사의 사회적 역할’이라고 하면 공공성에 대한 의미가 더해진다. 건축사라는 직업적인 업무뿐만 아니라, 그 일이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를 고민하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건축사의 사회적 역할이 무엇인지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나는 건축사사무소를 운영하고 있으며 이제 만 5년이 지났다. 그 동안 ‘건축사로서의 역할을 잘 해왔는지’, 그리고 ‘건축사의 사회적 역할은 무엇인지’ 되돌아보며 고민하게 된다. 건축주의 요구에 맞추어 설계를 하고, 현실과 적당히 타협하며 살아가는 그런 모습은 아니었을까? 회사를 운영하면서 경험하는 경제적인 어려움, 당장 처리해야 할 많은 일들 앞에서 건축사의 사회적 역할이나 공공성에 대해 생각할 여유가 없다고 변명을 하고 있지는 않을까? 물론 건축사사무소를 운영하는 것이 녹록지 않은 현실임은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이러한 건축사의 현실적인 문제와 어려움을 개선하는 데에는 기관이나 단체의 제도 개선의 노력이 절실하지만 건축사 각자가 내가 속한 지역 사회의 건축 작업을 통해 공공성에 기여하는 작은 실천이 필요하다.
필자는 얼마 전 대한건축사협회의 사회공헌위원회에서 추진했던 공립형 지역아동센터 건립사업의 설계자로서 참여한 적이 있다. 내가 맡은 역할은 경상북도 영양군에 지어질 지역아동센터의 희망건축학교의 튜터 역할, 그리고 희망건축학교에서 도출된 아이디어로 건축설계 및 공사 감리를 하는 것이다. 지역아동센터 건립사업의 시작은 건물이 지어질 경상북도 영양군의 현장에서 이루어졌다. 희망건축학교에 참여한 학생들과 영양군의 사업 관계자, 그리고 건물을 사용하게 될 아동들과 부모들이 다 함께 모였다. 현장 여건을 확인하는 것부터 지역에서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 사용자들이 원하는 공간이 무엇인지 이야기를 듣고, 설계에 반영하는 과정을 거쳤다.
80평 남짓 되는 작은 규모였지만 많은 분들이 의견을 모으고 힘을 모아 영양군의 지역문화와 공공성을 기여할 수 있도록 노력하였다. 먼 거리를 오가며 사업의 전 과정을 조율하며 건축사로서의 역할을 다했다. 조금 힘들기도 했지만 건축사의 작은 실천을 통해 지역 문화와 공공성에 기여할 수 있음에 보람을 느꼈다. 이러한 건축사의 사회적 역할을 통해 건축사의 사회적 인식을 향상시킬 수 있다면 건축사의 업무 여건도 조금씩 나아지지 않을까?
최근 3∼4년간의 프리츠커 수상자들을 보면, 자신이 속한 지역 사회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지역의 토속적인 문화의 재창출과 공공성에 기여하는 건축사들이었다. 2020년 프리츠커 상을 수상한 아일랜드 출신의 이본 파렐과 셀리 맥나마라는 “건축은 지구상에서 가장 복잡하고 중요한 문화 활동 중 하나이다. 따라서 건축사가 되는 것은 엄청난 특권이다”라고 하였다. 이러한 문화 활동을 생산하는 건축사들은 사회적 역할에 대한 무한한 잠재력이 있다.
우리 각자는 내가 속한 지역사회에서 건축 작업을 할 때 지역 문화와 공공성에 기여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내고 작은 실천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한다면 자연스럽게 건축사의 위상은 좀 더 높아지고 건축사의 업무 환경도 좀 나아지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