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나루터 시골 좁은 골목길 전통 한옥에 깃든 예스러움

경상북도 성주군 월향면에 있는 성산 이 씨의 집성촌 한개마을은 전통 한옥과 이를 둘러싸고 있는 토석담이 잘 어우러진 곳이다. 2007년 12월 31일 대한민국의 국가민속문화재 제255호로 지정됐다. 조선 세종 때 진주 목사를 역임한 이우가 거주한 때부터 성산 이 씨가 집성해 살고 있다. 경상북도 문화재로 지정된 건축물은 10동에 이르는데 이들은 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초에 건립됐다. 마을은 풍수에 따라 나뉘어 있다. 상류층 주택과 서민층 주택의 배치·평면엔 지역적인 특성이 잘 나타나 있다. 각 집들은 대지 특성에 맞춰 본채와 부속채가 다양하게 배치돼 있다. 지붕, 대청, 안방, 부엌, 툇마루 등도 거의 원형으로 남아 있고, 가재도구 및 유교적 생활공간들이 많이 남아 있어 문화재적 가치가 있다.

큰 나루터, 한개마을
한개마을은 예부터 영남의 대표적인 길지 중 하나였다. 마을 입지가 전형적인 배산임수형이고, 크고 작은 고택들이 남에서 북으로 차차 올라가도록 배치돼 있다. 소백산맥에서 뻗어 나간 영취산 줄기는 좌청룡·우백호의 지세로 마을을 보듬는다. 북쪽 백천과 서쪽 이천이 마을 어귀에서 합수해 동남쪽으로 흘러간다. '한개'는 예전 백천에 있었던 한개나루에서 유래한 마을 지명으로 '큰 나루터'란 뜻의 순우리말이다. 명당 지세에 따른 발복 때문인지 이 마을에선 조선 시대 9명의 대과 급제자와 24명의 소과 급제자 등 이름난 선비들이 많이 배출됐다. 

마을길 왼편에 보이는 진사댁, 그리고 새사랑채
마을길을 따라 왼쪽으로 올라가면 보이는 진사댁(도 민속문화재 제124호)은 정조 22년(1798)에 지어진 집으로, 안채는 기와집, 사랑채와 새사랑채는 초가다. 새사랑채가 눈여겨볼 만하다. 안채와 사랑채 사이에 새사랑채를 배치한 것도 특이하지만 마루와 방, 창고가 각각 1칸씩 총 3칸으로 'ㄱ' 자 형태로 지어진 것이 눈길을 끈다. 누마루는 계자난간으로, 문살은 '卍'자로 한껏 멋을 냈다. 방의 한 벽면에 크고 작은 수납장을 세 개나 만든 것도 이색적이다.

한개마을서 가장 오래된 고택
삼거리에서 왼쪽 길로 접어들면 '학자수'라 불리는 회화나무 두 그루가 있는 교리댁(도 민속문화재 제43호)을 만난다. 조상 중 한 분이 홍문관 교리를 지냈다 하여 '교리댁'이라고 부르는 이 가옥은 영조 36년(1760)에 지어진 마을에서 가장 오래된 고택이다. 넓은 대지 위에 정면 7칸 측면 1칸 안채, 정면 5칸 측면 2칸 사랑채를 비롯해 대문채·중문채·서재·사당이 서로 떨어져 배치돼 있다. 사랑채 뒤편엔 후원이 있다. 나지막한 언덕에 있는 사당은 일반 사당과 달리 툇마루가 있고 단청을 하지 않아 소박한 느낌이 든다.

학자가 지은 가옥, 한주종택
조선 영조 43년(1767)에 건축한 한주종택은 고종 3년(1866) 한주 이진상이 새로 고쳐 지은 가옥으로, 안채·사랑채가 있는 구역과 정자가 있는 구역으로 나뉜다. 두 군데 돌계단으로 올라갈 수 있는 사랑채에는 ‘주리세가(主理世家)’ 현판이 걸려 있다. 별채인 한주정사는 높은 석축 위에 있는데 주변 경관이 아름답다. 정사의 여러 현판들은 예스러운 정취를 풍긴다. 고풍스러운 소나무와 상·하지 구조의 쌍지는 한국 전통정원의 아름다움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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