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현아 건축사
백현아 건축사

‘의식주’라는 말은 우리에게 초등학교 시절부터 익숙하다. 생활 영위에 필수적인 세 가지 요소를 일컫는 말로, 사람에게 집이란 살기 위해 먹고, 몸을 보호하는 것만큼 삶에 필수적인 것이다. 하지만 우리에게 주거 공간은 과연 부담 가능할까? 서울 아파트 평균가격이 10억 원, 강남권은 30억 원인 시대이다. 연봉 4천만 원 정도를 받는 괜찮은 회사에 입사한 신입사원이 하나도 안 쓰고 25년을 모으면 서울에 있는 아파트 한 채를 살 수 있다. 정부는 집값을 잡으려고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지만, 아직 결과로 이어지지 않고 있다. 근면하게 일하고, 성실하게 저축하면 삶에 필수적 요소인 내 집을 장만할 수 있는 세상은 언제쯤 오는 것일까?

우리의 아이들이 자라날 미래를 위해 지금의 주거문제 대해 진지하게 돌아봐야 할 때이다. 주거 공간을 만드는 우리 건축사도 책임의식을 갖고 적극적으로 문제 해결에 동참해야 한다. 아파트 위주의 주거문화는 건축을 업으로 하는 우리들의 작품이기 때문이다. 

연일 언론을 장식하고 있는 부동산 관련 소식을 접하자니, 2007년 프랑스 지리학자 발레리 줄레조가 출간한 책 ‘아파트 공화국’이 떠오른다. 한국인에게 아파트는 모두가 살고 싶어 하는 주거형태이다. 하지만 프랑스를 비롯한 서양인들은 기피하는 유형의 주택이었기 때문에 그녀의 눈에는 우리나라의 아파트 신드롬이 신기했던 모양이다. 이를 연구하여 박사학위를 받고 책으로도 출판했는데, 우리나라에도 출간되어 한국의 주거문화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다양한 원인 분석과 결론 중 인상적 이였던 것은 건축사가 주도하는 서양의 건축문화와는 달리, 시공사가 주도하는 공급 위주의 건축문화가 아파트를 만들었고, 현대화된 입식공간, 중앙난방, 청결한 화장실 등이 부자들이 사는 집이라는 인식을 심어줬다는 것이다.

즉, 한국사회에서 아파트에 산다는 것은 사회에서 성공했다는 인상을 주어 모두가 갈망하는 집이 되었다. 이러한 열풍은 그 후에도 지속되어 현재 열 집중 여섯 집이 아파트에 산다. 단지 내 커뮤니티 시설, 스마트 홈 등 주거의 편의성을 극대화 시켜 상품가치는 더욱 높아졌다. 공간을 기획하는 건축사들도 다수가 아파트에 살 것이다. 필자 역시 아파트에 살고 있다. 그만큼 아파트는 한국 시장에서 편리하고 가치 높은 주거유형으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아파트 일변의 주거문화는 많은 부작용을 드러내고 있는 것 같다. 우리나라에도 단독주택, 연립주택, 다세대주택 등 다양한 유형의 주거가 있지만, 선호에서는 한참 뒤쳐진다. 아파트가 편리하고 안전하다는 인식 때문이기도 하지만, 아파트 자체를 주식처럼 투자의 수단으로 보기 때문이기도 하다. 거주도 하면서 투자도 할 수 있는 상품이라니 얼마나 매력적인가! 투자는 투기가 되어 이어졌고, 결과적으로 우리는 정당한 노동으로는 획득할 수 없는 범위까지 아파트 가격을 올려놓았다.

뿐만 아니라 사람들 사이에 어디에 사는가에 따른 차별도 심각해졌다. 사는 곳이 곧 나의 계급이 되어버렸다. 아이들 사이에서도 서로 몇 평에 산다는 말이 나오는 것을 보면 심각하다는 생각이 든다. 마지막으로 내가 사는 공간에 대한 감성마저 잃어버렸다. 우리는 서울에 살던, 강릉에 살던 거의 똑같은 평면의 집에서 살게 되었다. 공간은 계량화 되었고, 숫자가 되어버렸다. 편리함은 얻었지만, 다양성은 잃어버렸고, 집과 땅의 기억을 잃었다. 내가 어떤 공간을 좋아하는지 인지하는 것 자체가 특별한 능력이 되어버렸다. 다양한 유형의 주택과 건강한 건축문화가 확립되었다면 우리 집은 마당이 있어서 좋고, 친구 집은 테라스가 넓어서 좋고, 하는 공간적 차이가 보였을 텐데, 아이들은 몇 평, 방 몇 개 등의 숫자로 공간을 이야기 한다.

뉴질랜드에서 주거의 적절성을 평가하는 6가지 요소에는 경제적 지불가능성, 적합성, 정주성, 거주안정성, 과밀로부터의 해방, 차별로부터의 해방 등 광범위한 내용을 담고 있다. 주택이 곧 아파트이고 곧 돈이라고 생각하는 우리와는 다른 성숙한 접근법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도 경제적으로 이미 선진국 단계에 진입하였고, 숙원이었던 주택보급률도 100%를 넘겼다. 이제는 부작용이 많은 아파트 위주의 주거정책에 대해 비판적으로 생각해 봐야할 시점이다. 사람들의 삶의 터전이자 일과를 마치고 돌아와 쉬는 소중한 공간인 ‘집’이 ‘돈’이 아닌 ‘보금자리’로 환원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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