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길 논설위원
김상길 논설위원

코로나19는 도시의 풍경을 충격적일 만큼 급작스럽고 강력하게 바꿔놓았다. 모든 거리에서 일시에 사람들의 그림자조차 다 없애버렸고, 대부분의 공공시설과 공공활동, 모든 단체활동을 멈추게 하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현상이 전 세계적으로 동시에 일어나서 국가 간 이동이 멈춰지고, 항공기 대부분이 격납고에 묶여 버렸다. 도대체 그 어떤 사건이나 시스템, 혹은 권력이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것일까? 이 현상을 두고 수많은 해석들과 담론들이 만발하고 있고 또 그 이후에 대해서 궁금해하고 있다. 이번 펜데믹이 우리에게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번 펜데믹은 우리에게 지구의 큰 변화가 있음을 경고하는 경고등이라는 주장이 있다. 이미 기후변화를 비롯한 전 지구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고, 이에 대한 인식이 생겨나고 있지만 아직도 그 심각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팬데믹을 통해서 경고하는 것이라는 주장이다. 실제 지구에는 45억년 동안 수없이 많은 변화와 대재앙들이 있었다. 2억5000만 년 전 생물의 95%이상이 전멸한 ‘대멸종기’가 있었고, 그 이후 지구를 지배하던 공룡들이 완전히 멸종한 6600만 년 전 운석충돌 사건과 같은 수없이 많은 대재앙이 있었다.

칼 세이건을 인용하면 우리가 살아가는 개략 100년 동안 만날 수 있는 전 지구적인 대 사건은 강력한 태풍 몇 건이나 대지진 두어 번 정도가 대부분이지만 기간을 100만년 정도로만 넓혀 생각해도 불과 몇10만 년 전만 해도 북극권은 몽골까지 확대되어 있었고 시카고는 30km 두께의 얼음 아래에 있었다고 한다. 그러니 지구가 우리 시대에는 그냥 멈춰 서서 더 이상 어떤 변화도 생기지 않을 것이라고 어떻게 생각할 수 있겠는가? 다만 지금은 변화를 인류가 만들어 내고 있다는 점에 대해서 걱정이 큰 것이고, 인류세(anthropocene)라는 새로운 지질학적 경계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될 만큼 엄청난 양의 이산화탄소가 인류에 의해서 배출되었다는 점에서 더 긴박하다. 이산화탄소가 어떠한 변화를 일으킬 것인가를 이해하기 위해서 금성의 예를 볼 필요가 있다.

2019년 NASA의 마이클 웨이 박사가 이끄는 연구팀의 발표에 따르면 금성은 약 30억 년간은 평균기온이 -20°C~50°C를 유지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약 7억 년 전에 엄청난 화산폭발 등이 있어서 암석에 갇혀 있었던 이산화탄소들이 대거 배출되면서 태양열이 복사되는 것을 막아 현재와 같이 약 450°C의 기온으로 올라가고 지구의 100배가 넘는 기압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현재 기계시대의 모든 활동에서 내품는 이산화탄소가 이처럼 큰 변화를 일으킬 것으로 예상하는 것은 기우인가? 이 담론의 지향은 펜데믹을 기점으로 전 지구적인 위기를 같이 인식하고 같이 준비하자는 것이다.

두 번째 담론은 원격으로 일하고 대화하는 방법이 전 세계적으로 퍼져서 이제는 펜데믹이 종료된 이후에도 작업의 방식이 원격으로 대체될 것이라는 진단이다. 현재 네트워크의 기술은 이미 펜데믹 훨씬 이전부터 원격으로 모든 작업이 이루어질 수 있는 기술이 확보되었고, 결정적으로 비대면 활동을 위해 적극적으로 활용되어 장점이 많이 있음이 확인되었으며, 또한 이미 필요한 곳은 모두 원격 작업 환경이 갖춰졌기 때문에 펜데믹이 종료된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혹은 훨씬 더 많이 사용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 담론의 지향은 모든 업무 환경을 원격 활동에 맞춰 재조정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사회학자 마뉴엘 카스텔은 일찍이 원격 근무만으로는 전적으로 유효하지 않으며, 대부분의 회사들이 원격 작업에 전적으로 의존하지 않는 것은 사람의 본성에 관한 이유가 있음을 밝혀냈다. 즉, 미국의 실리콘벨리로 첨단분야 회사들이 몰리는 이유는 ‘거기에 사람이 있기 때문’이며, 원격 작업의 방향은 작업자들이 다 흩어지는 것이 아니라 포터블 작업도구를 활용하여 움직이며 작업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더 많이 만나고 더 많이 공유해야 할 일들이 이전 시대보다 더 많아진다는 것이다. 도시 연구자인 리처드 플로리다는 도시의 경쟁력은 바로 그 도시에 유능한 사람들이 모여들 이유를 얼마나 갖고 있는가에 달려있다고 한다.

또한 펜데믹 중에 ‘사회적 거리두기’를 넘어선 의미 있는 사례도 있다. 우리나라의 촛불시위와 같은 흑인인권운동(BLM black lives metters)이 그것이다. 미국뿐만 아니라 유럽까지 들불처럼 퍼진 BLM운동은 펜데믹 확진자가 이미 수십만 명이고 사망자가 수천 명인 그야말로 목숨이 위험한 상황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광장에 모여 드러누웠다. 이들은 왜 위험을 무릅쓰고 광장에 모여들었는가? 이는 원격으로는 드러낼 수 없는 사람의 본성 때문이다. 그들은 이성적으로 그것이 감수할 가치가 있는 위험이라고 결론에 따라 같이 모여 그들의 목소리가 들리게 했다.

또 다른 논리는, 한때 미국과 유럽의 많은 사람들은 마스크 쓰는 것을 거부한 적이 있다. 사람의 정체성은 바로 얼굴로 드러내는 것인데 아무리 펜데믹의 상황이라 하더라도 어찌 얼굴을 가리려 하는가 하는 의문을 제기한 것이다. 그러나 이 주장은 더 본질적인 사람의 본성은 사람의 관계에 의해서 형성되고 또한 지켜진다는 것으로 이동했다. 발 빠른 이탈리아의 소설가 파올로 조르디오는 ‘전염을 생각한다(2020.4)’에서 “펜으로 선을 그어 인간들의 상호 교류를 표시한다면, 세상은 단 하나의 거대한 잉크 얼룩일 것이다”라며 우리는 모두 서로의 관계 안에서 존재하고 있음을 강조하였다. 그러므로 바이러스는 바로 이 관계의 망을 타고 어디든지 달려가기 마련이다. 이러한 인식에서, 즉 바이러스를 대함에 있어 사람의 관계의 망을 어떻게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를 같이 생각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사회적 거리두기와 마스크 쓰기를 생활화하는 상황에서도 건축사는 관계의 망을 전면에 두고 고민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건축과 도시 작업은 결국 이 관계의 망을 위한 작업이 아닌가? 도미니크 페로는 ‘서울 도시 비엔날레 2021’을 준비하면서 도시에 있어서 관계의 망을 가장 중심 개념으로 삼아 작업하여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회복력이 좋은 도시는 사람들을 그것의 우선순위의 핵심에 배치하여 그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킴으로써 스스로를 재창조하고 변화시킬 수 있다. (중략) 나는 미래의 건물들이 더 이상 고립되거나 자치적인 단위가 아니라 그들의 사회적, 경제적, 환경적 주변과 관련되기를 바란다.” 페로 역시 펜데믹의 시대에서도 도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관계의 망을 구축하자는 다른 방식의 주장을 제시한 것이다. 펜데믹의 시대에 이처럼 다층적 스펙트럼 안에서 건축사는 무엇을 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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