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시
- 정영효
그때 우리에게는 횃불이 필요했다
마노로 만들어진 탑을 찾아가는 길이었고
저녁을 먼 곳에서 모으는 개의 짖음을 들었다
빽빽하게 늘어선 교목들 너머
누군가는 자꾸 걸음을 놓치고 있었지만
밤이 가까워져도 신기한 윤이 난다는 마노탑
그걸, 꼭 한 번은 만져보고 싶다며
처음인 곳을 향하게 된 이유를 생각했다
횃불이 붙자마자 확실한 주변을 가진 것처럼
어둠을 넘어서지 않으면서 믿고 따랐던 시야
또 시야 건너에서 우리를 감싸던 숲
그러나 상상으로 탑을 그려
미지의 질감을 욕심내는 건
이미 어리석은 일이었다
걸음보다 기대를 빨리 보낸 속도와
원근이 모자라 다급했던 마음
우리의 결기는 그칠 줄 몰랐고
숲이 꽉 물고 있는 길을 횃불로 뚫으면
종일 결심했던 경험이 계속될까
문득 의심이 드는 곳에서
횃불이 유일한 사실로 남은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 정영효 시집
「계속 열리는 믿음」중에서
문학동네 / 2015년
시인은 아마도 강원도 태백에 있는 수마노탑을 찾아가는 길이었나 보다. 수마노탑은 지금은 화강암과 석회암으로 된 모전석탑이지만 원래 자장율사가 창건할 당시에는 마노라는 보석으로 지어졌다고 한다. 수마노탑이 있는 정암사는 부처의 진신사리가 모셔져 있기도 하다. 이곳을 찾아 가는 길에 들리는 개짓는 소리는 “저녁을 먼 곳에서 모으”고 있고, 횃불은 “확실한 주변”을 확보한다. 시인이 마노탑에 닿기 전에 그렇게 남은 “유일한 사실”은 뭐였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