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업한지 20년 지천명(知天命)에 부름을 받아, 나의 울타리인 협회를 위해 10의 1조하는 기분으로 몇 년 봉사할 요량이었던 것이, 2회의 서울회 홍보편찬 간사를 거쳐 본 협회에서도 2회의 홍보편찬위원장과 2회의 홍보편찬담당 이사 등 오직 한 우물만으로 13년이 되었다.

그동안 카페트 바닥에서 밤을 새우기도 하는 등 고생도 많았지만 가슴 뿌듯한 일들도 많았다. 혼자서 6개월 각고 끝에 도표까지 곁들인 ‘서울건축사회30년사’를 집필하여 논문의 인용 자료로 쓰임 받고, 4년간 서울건축사신문을 주관하였다. 건축사지 담당이사로 창간 500호와 별책을 만들었고, 차제에 창간호부터 칼럼과 기고를 모두 독파하여 협회의 역사와 비전을 한눈에 꿰는 기쁨도 얻었다. 또한 본지의 창간주역으로서 금번 재임 중 광고비도 4배 이상 신장시켰다. 대외적으로도 건축문화대상위원장으로서 대통령상을 넷으로 확대하였고, 수상자와 함께 네 번이나 해외건축기행의 복을 누리기도 하였다. 또한 제1회 건축의 날 시행위원으로 그 초석을 다지는데 일익을 담당하기도 하였다.

가슴앓이도 심했다. 2년간의 편집국장 보직을 받은 지 6개월, 재신임했던 회장이 3개월 만에 사퇴를 종용하여 그만두자, 이사회회의록에는 ‘출근도 안하는 등 임무를 방임하여 해촉한다’는 엉뚱한 의결로 기록되어 있었다. 어디 그 뿐이랴. 건축3단체 통합안이 이사회, 시도회장단의 의결, 협의를 거쳤고 2/3에 약간 모자라 부결되었는데도 ‘대선 때문에 부회장 대신 위원장 된 필자가 모든 회원들에게 피해주는 일을 도모한 괴수처럼 비쳐지게’ 연출되기도 하였다. 통합의견도 찬반을 반씩 할애하였으나, ‘편집국장직은 물론 너의 인생전체를 망가뜨리겠다’는 폭언을 아끼던 후배에게 듣기도 하였다. 역사는 승자의 것, 꽃잎이 진들 바람을 탓하랴. 필자의 인성이 모자람임을.

본지는 국민의 건축의식수준 향상만이 건축사의 작품과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다는 명제아래, 건축계에 대한 매스컴의 외면으로 인한 자가발전의 의미에서 정책대안을 개발하고 범 건축계를 아우르기 위해서 태어난 것이다. 그런데도 대내용인 건축사지와 성격조차 구별하지 못하는 독자들이 의외로 많다. 초대 편집국장 10개월, 1년 3개월 후 다시 4대 국장직을 마치고, 2년 전 인수한 백 국장에게 다시 인계한다. 우리가 미국과 통상협상에서 지는 이유는 강대국여서가 아니라 공무원이 한 분야에 10년 이상 근무하여 전문성이 있는데 반해 우리는 2〜3년이면 대사 등 좋은 보직으로 가기 때문이라 한다. 협회도 신문, 법제, 국제 등 회원을 전문분야별로 인재를 키워야 대외 경쟁력이 살아나게 된다. 이런 점에서 물러나는 필자의 마음은 참 푸근하다.

오바마 대통령은 백악관 브리핑 룸 앞줄 고정석에 있는 90대 할머니 기자헬렌 토마스를 얼싸안고 환하게 웃으며 사진을 찍었다. 기자가 좋은 대통령은 없지만 최고참에 대한 예우는 이렇게 한다. 필자로 인해 심기 불편했던 분들도 계시다면, “기자는 조국과 국민과 공공의 이익에 봉사하는 최선의 기회를 제공한다”는 또 하나의 백악관 전설 새라 매클랜든의 말처럼, 혜량해주시기 바라며 필자도 섭섭함을 잊으려한다.

그간 협회일과 신문으로 꽉 찼던 마음그릇을 비우니 채웠어야 했고, 채우고 싶은 것들이 참으로 많다. 하지만 비워두련다. 태고의 흰 눈 덮인 히말라야의 아침햇살에 해바라기·눈바라기를 할 때까지는. 떠·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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