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 환경과 나눔의 공간을 다루는 건축이 적극적으로 역할 해야 할 때
최근에 개봉한 영화 ‘반도’에서 여운이 남는 한 장면이 있다. 좀비로 변해가는 자신의 아이를 부둥켜안고, 도망칠 기회를 포기한, 엄마의 절망적인 모습이다. 아무리 영화라지만, 부모의 마음이 투영되어 잘 지워지지 않는 장면이다.
좋고 싫음을 떠나 코로나 사태는 우리에게 ‘새로운 종류의 일상(the new normal, bbc.co.uk)’을 결정짓고 있다. 안타깝지만 6개월 전으로 돌아가는 것은 이미 불가능해 보인다. 전염성이 강한 특성은 사람들 간의 관계와 행위들을 처음부터 재정의(redefining)하고 있다. ‘사람들 간의 관계’는 공간형성의 기본이니, 건축의 기본이 흔들리고, 더욱이 건축이 하나둘씩 모여 근대문명의 집합체인 도시가 만들어졌다면, 그 뿌리가 통째로 흔들리고 있는 셈이다. 위용을 자랑하는 전 세계 메트로폴리탄 도시들은 그 규모에 비례하여 하나 같이 심각한 타격을 받고 있다.
그러면 건축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마스크만 쓰고 평범하게 행동하면 해결될 문제인지? 이런 저런 생각을 자극한다. 우연인지는 몰라도 우리나라에는 선견지명 대응책들이 있었다. 아파트 단지는 몇천 세대가 빼곡히 몰려 있어도, 마음만 먹으면, 이웃 없이도 얼마든지 살 수 있도록 설계가 되어 있다. 엘리베이터 안에서만 주의하면 된다. 마스크 쓰고, 핸드폰 주시하고, 잠깐 참으면 문이 열리고, 나가면 된다. 단지의 1층에는 잘 조성되고 한가한 정원이 있어 마스크를 벗고 산책도 할 수 있다. 자유가 주어진 것 빼고, 공간적으로 자가격리의 개념과 크게 다르지 않다.
미세먼지에 익숙해온 터라 마스크와는 원래부터 친했다. 필자는 코로나 사태 이전에 30개 들이 마스크 박스를 사 놓았었다. 그 때는 마치 보물 상자처럼 보였다. 생필품 사재기도 발생하지 않았다. 익숙한 온라인 쇼핑의 비율을 조금 올리자 해결되었다. 줌(Zoom)이 추가된 것 빼고, SNS는 원래 첨단이었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지하철에서 마스크를 쓰지 않은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 정도의 좋은 공공의 매너와, 객관식 시험 같은, 그런 일률적 교육을 받았다. 사람들이 착하다. 재채기를 하면 모두 쳐다보기는 해도……. 논조가 좀 냉소적이었지만, 인정할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몇 건의 공동체 주택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소중한 것들을 깨닫게 되었다. 건축공간 이전에 그 공간을 점유하는 사람들의 자세, 마음, 정신이 중요하다는 것을……. 함께 모여 살고자 하는 마음의 자세가 없는 사람들에게 커뮤니티(공공) 공간을 제공해도 소용없다. 아무리 잘 디자인된 호텔 로비라도, 혼자 방문했다면, 친절한 직원 외에 다른 사람과 눈빛 마주치기는 기대하기 힘들다. 그렇다고 건축의 힘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나누고자 하는 마음의 자세를 가진 사람들에게 좋은 공간은 나눔을 배가시키는 경험도 했다.
코로나 사태의 장기화로 인해 우려되는 것은 우리의 마음과 정신일 것이다. 얇고, 가볍고, 깨끗하고, 저렴하고, 어디서나 살 수 있는 마스크는 도시 전체를 무표정으로, 무채색으로 도배하고 있다. 무언 시위를 할 때 사용되던 불만과 닫힘의 상징이 이제는 생명을 담보로 의무화 되었다.
영화 ‘반도’의 엄마가 감염과 죽음을 선택할 수 있었던 것은 아이에 대한 사랑일 것이다. 아이의 아기 때의 모습도 생각났을 것이다. 그의 행동을 이해하는 데 오래 걸리지 않는다. 물론 그 정도의 사랑을 기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웃과 관계의 회복, 유지, 그리고 새로운 관계를 위한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할 때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우리 건축인들이 만들어내는 공간이 보기에만 아름다운 공간이 아니라 ‘실제로 작동하는’, ‘좋은 관계가 맺어지고, 행해지는’ 그런 공간이 되길 바라기 때문이다. 생명을 위한 ‘거리두기’가 꼭 필요하지만, ‘거리두기’로 인해 자칫 죽을 수 있는 내적인 생명이 치유되고 회복되는, 그리고 같이 나눌 수 있는 공간도 필요할 것이다. 자연, 환경과 나눔의 공간을 다루는 건축이 공공의 위기, 경각심을 갖고, 어느 때보다도, 역할을 적극적으로 해야 할 것이다. 가칭 ‘거리를 두면서 모이기’에 사회적, 제도적인 뒷받침 또한 늦추지 말아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