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곁,
소복이 쌓이는 음악
- 김사람
벚꽃 피듯 약기운이 번져온다. 회색 눈으로 너를 바라 볼 때면 내 더러운 영혼을 지나는 봄이 거룩해 보인다. 살아서 아픈 밤이 서쪽 하늘에 머물면 글자들 속에 나를 숨긴 채 너를 엿본다. 나를 욕하는 시간, 우리는 낮과 밤이 다른 봄을 앓으며 같은 노래를 들었다. 바람에 음악이 날리지 않도록 창을 닫는다. 볼륨을 높이는 습관은 치부를 숨기는 힘, 말하는 순간 사라질 너는 누구의 음성을 듣기 위해 몸 낮춰 귀 기울이고 있나. 술에 취해 웃으며 돌아서는 너의 눈에서 내 자근 등이 보였다. 햇살 속에 숨어 있는 찬바람이 낯설다. 너와 나의 시와 사랑은 조화가 아니기에 이별의 자리를 정해야 한다. 나 눈은 감겠으나 잠이 들는지 모를 계절, 약 기운 사라지듯 꽃잎 하나가 기억의 곁으로 떨어진다. 진부한 눈으로 너를 보내야 한다.
*회색 눈(grey-eyed)-빈센트 말레이의 시 「Tavern」에서 인용
- 김사람 시집 ‘나는 이미 한 생을 잘못 살았다’ 중에서 / 천년의 시작 / 2015년
한껏 멋을 부린 시다. 흔히 그런 시는 좀 부정적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전통적으로 시에는 삿됨이 없어야 한다는 공자의 말이 우리 사회에서는 널리 퍼져 있다. 그러나 그 ‘멋부림’ 속에서도 시가 뚫고 나아가고자 하는 진정의 방향이 보인다면 그것 또한 의미가 있다. 결코 진정이 거기에 있다고 말 할 수는 없어도, 한 시인이 제시한 방향이 때로는 그 멋을 수긍하게 한다면 그 또한 시다. 서정주 시인의 말마따나 “몇 방울의 피―「자화상」”가 있다면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