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나비 건축사
김나비 건축사

사람들을 만날 때 서로의 직업에 관해 이야기하는 경우가 제법 있다. 무슨 일을 하시냐는 물음에 “건축사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다”는 대답을 하는데 돌아오는 대답은 한결같았다. “그래서 무슨 일을 하시는데요?” 여타 다른 직업들, 예를 들어 교사나 의사 같은 경우는 직업을 이야기했을 때 “그래서 무슨 일을 하시는데요?”라고 되묻는 일은 거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동시에 “왜 유독 내가 가진 건축사라는 직업은 이런 질문을 받게 되는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첫 번째 이유는 건축사가 평생을 살아가면서 한번 만날까 말까한 직업이라는 점이다. 현재 우리나라 주거 형태 대부분은 아파트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일생에 집을 한번 지을까 말까하는 상황이니 우리가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르는 게 당연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 생활의 기본요소인 의식주 중에서 ‘주’인 집은 먹는 것이나 입는 것과는 다르게 재산으로도 가치를 가진다. 집은 ’사는 곳‘이 아닌 ’사는 것‘이 돼버린 지 오래다. 정부에서 아무리 부동산 대책을 쏟아내도 국민들의 인식은 쉽게 바뀔 것 같지 않다. 얼마 전 3가구를 모집하는 아파트 청약에 수만 명이 청약을 하는 진풍경이 펼쳐지기도 했다. 당첨만 되면 시세 차익이 수억 이상 발생한다는 이유에서였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나만의 개성이 담긴 집을 짓겠다는 건 왠지 미련하게 보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우리는 평생에 한번 만날 수 있을까 말까한 사람이 되어버렸다.

두 번째 이유는 설계에 대한 인식 문제다. 사람들이 “그래서 무슨 일을 하시는데요?”라는 질문을 했을 때 어떻게 쉽게 설명을 할까 고민하다가 “집을 짓기 위한 설계를 하고 그에 따른 행정절차를 도와 드립니다”라고 대답을 한다. 그러면 “어? 집 지을 때 설계비는 공짜 아닌가요? 집 지으면 설계비는 공짜라는 현수막을 많이 봤는데요”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런 대답을 듣고 나면 왠지 기운이 빠지고 동시에 더 이상 어떻게 설명을 해드려야 될지 말문이 막히곤 했다. 

우리가 몸이 아파 병원에 갈 때 공짜로 진료를 받아야겠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데 어쩌다 우리의 업무는 공짜라는 인식이 박혀버렸을까. 건축사는 소정의 교육과정을 거치고 다년간의 경력을 쌓은 뒤 국가에서 시행하는 ‘건축사자격시험’에 합격해야만 될 수 있다. 그 과정을 모두 거쳐야만 할 수 있는 건축사 고유의 업무영역이 ‘설계’임에도 왜 일반인들에게는 공짜로 해주는 업무가 돼버린 것인지 안타깝다. 집을 짓더라도 건축사사무소를 찾아오시는 분보다 시공사로 먼저 가시는 분이 많다 보니 건축사 고유의 업무영역인 설계가 독립적인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한 불분명한 업무관계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소비자의 몫이다. 

20년 전 의약분업이 실시되면서 ‘진료는 의사에게, 약은 약사에게’라는 표어가 한창 홍보되던 때가 있었다. 처음에는 낯설었지만 지금은 국민들의 머릿속에 확실히 각인된 듯 보인다. 지금 건축사의 고유 업무영역을 대중에게 홍보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설계는 건축사에게, 시공은 시공사에게’라는 표어라도 만들어야 할까 싶다. 그리고 아파트로 획일화된 우리의 주거문화를 바꾸고 동시에 동네건축사의 역할이 커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가치는 우리 스스로가 만들어가야 한다.

저작권자 © 대한건축사협회 건축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