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 할 포스터
역자 : 손희경, 이정우
출판사 : 시지락
정가 : 12,000원
쪽수 : 231p

 

오랜만에 신간서작은 아니지만 비평서한 권을 소개한다. 이 책의 표제는 온갖 사물에 만연한 무차별적 장식을 공격했던 건축가 아돌프 로스의 유명한 저서 『장식과 범죄(1908)』를 모사하고 있지만 아돌프 로스의 논점과는 다르게 저자는 건축과 미술의 ‘본질’이나 ‘자율성’을 상대하고 있으며 ‘문화’라는 보호막 안에서 보기에만 번지르한 껍데기들이 우후죽순 표출되는 현실에 경종을 울리고 있다.

 

디자인 인플레이션이 저지른 범죄

이 책의 제목은 마치 한 편의 스캔들을 고발하는 듯한 도발적이다. 그러나 정작 이 책에 담긴 글은 미술비평이라는 저물어가는 태양을 바라보며 나온 사색과 숙고라고 말하는 것이 적합할 듯하다. 총 8편의 글은 각기 다른 시기에 저널을 통해서 발표됐던 것이고 원서의 발간연도는 2002년, 거대 자본주의를 대표하던 뉴욕의 세계무역센터가 테러로 무너진 직후다. 아돌프 로스의 『장식과 범죄(1908)』가 출판되었을 때보다 좀 더 정치적 중요성이 대두되었으며 범죄를 유발하는 원인도 장식에서 디자인으로 변했다. 그가 말한 범죄는 소비와 자본에 잠식당한 현대디자인과 예술 그 자체다. 자율성과 사회성이라는 양면은 서로 충돌하며 미술의 역사를 만들어 왔는데, 이러한 충돌은 이제 자본의 스펙터클로 포장된 현대미술에선 좀처럼 발현하지 못한다. 이런 이유로 기존의 평론가들이 말했던 미술은 서서히 사라지고 판단하기 힘든 새로운 소비사회의 미술이 떠오르게 된다.

 

누가 디자인을 두려워하랴

현대사회에서 가장 주목받는 예술가는 디자이너와 건축가다. 저자는 자본과 소비에 의해 과잉된 디자인과 건축 그리고 그 주인공들을 비판하면서 자본과 거대도시와 스펙터클의 사회를 타고 넘는 스타서퍼(surfer)들인 브루스 마우, 프랭크 게리, 렘콜하스 등을 겨냥한다. 신르네상스 예술가라고 불러도 꺼리길 것이 없는 당대의 디자이너와 건축가들은 이제 저자의 적이다. ‘디자인이 대세’라고 서슴없이 말하는 이 시대에 저자의 공격은 냉정하다. ‘생산과 소비에 완벽에 가까운 순환을 지원하는’ 현대 디자인 인플레이션에 일조한 이상 그들은 혹평을 들어야할 범죄자들이다. 저자의 공격에 따르면, 마우는 그저 디자인 사업가다. 게리의 건축에는 ‘제스처의 미학’만 있다. 저자는 ‘그저 컴퓨터를 돌려 요술을 부린 듯한 표면을 만든, 전함 포템킨 같이 생긴 건축에 반대’하고 게리가 디자인한 이미지의 스펙터클이 ‘도시의 기업적 재생’을 도와줄 뿐이라고 혹평한다. 콜하스는 ‘존재하는 것들의 체계적 과대평가’ 를 방편으로 ‘입심좋은 허사로 전락’하는 프로젝트의 달인이라는 낙인이 찍힌다.

 

비평가의 마지막 대안

사실 현대 미술도 그다지 좋은 상황은 아니다. ‘비평가들은 위기에 빠진 종족이다(…) 대부분의 경우 아무도 순수하고 간단한 “미술비평가”라는 꼬리표를 달고 있지는 않다.’라는 문장에서는 저자의 착잡함이 묻어났고 미술비평의 위기는 저자가 어떠한 확언도 할 수 없도록 만들었다. 그러나 여전히 저자는 비평가의 입장에서 ‘다시/그리고 혹은 다른 곳에서 벌이는 새로운 시작’을 위해 지속가능한 징후들을 찾아내려고 애쓴다. 고루할 수 있어도 ‘오늘날의 문화에서 디자인의 현대 중심적 총체성에 저항’하는 힘을, 현대 사회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힘을 여전히 예술로부터 추출한다. 저자는 짐 자무쉬의 영화에서, 로버트 고버의 설치미술에서, 윌리엄 켄트리지의 드로잉에서 지속가능성을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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