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겨울은 한파와 폭설에 유난히도 추위에 떨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지난달에는 강추위에 한 은행의 냉각기가 동파되어 전산실이 침수되었다는 소식에 여느 해와 다른 한파를 실감하게 했다. 이렇게 춥고 혹독한 날씨가 계속될수록 사람들은 보다 따뜻한 실내에서 편안하게 지내고 싶어 할 것이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날이 추울수록 적정한 실내 온도를 유지하기 위해 더 많은 열을 필요로 하게 되고, 추위에 견디다 못해 전열 기구 하나를 자기 책상 주위에 놓게 되곤 한다. 가까운 예로, 관공서 같은 곳은 에너지 절약 정책으로 실내 설정 온도를 20 ℃로 설정해 놓았지만, 도저히 참다못한 근무자들이 고육지책으로 전기히터를 자기 자리 옆에 놓아두는 것을 어렵지 않게 보게 된다. 좋은 쪽으로 해석하면, 태스크 앰비언트(Task-Ambient) 난방 – 전체 실내 온도를 낮추고 개개인의 집무 공간은 적정 온도를 유지하게 난방하여 전체적으로 소비 에너지를 절감하는 기술 – 이다. 하지만, 조금만 조사해보면, 전기 히터가 소비하는 에너지가 엄청나게 크고 결국 전체 건물의 에너지 절약은 그다지 효과를 거두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이러한 웃지 못 할 광경을 보고 있자니, 건축과 건물 에너지를 연구하는 나는 내 자신에게 신선한 아이디어가 없을까 의문을 던지게 된다.
현대 사회는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있으며 그에 맞춰 새로운 제품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러한 시대적 변화와 함께 사람들은 건물 내에서 생활하는 시간이 길어지고 있으며, 건물내의 에너지 소비가 중요한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다. 하지만, 건물 에너지 절약이라는 구호는 늘 인간의 편의와 상충되게 되어, 보다 쾌적한 공간에 대한 갈망 앞에 에너지 절약은 뒷전이 되는 경우가 많다. 학생들에게 건물 에너지 절감 방법을 가르치고 에너지 절약 기술을 연구하는 일을 하는 나 역시, 보다 따뜻한 공간에 대한 욕구때문에 에너지 절약을 소홀히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하지만, 솔직한 심정은 아무 고민없이 실내 온도를 설정하고 내가 원하는 실내 환경을 만들어도 에너지 소비가 거의 없는 그런 건축물이 개발되고 보급되었으면 한다.
이러한 고민에 대해, 최근의 많은 연구들이 답을 주고 있다.
제로 에너지 빌딩(Zero Energy Building, 이하 ZEB)!
태양광 발전, 풍력 발전, 지열 이용 등으로 건물의 냉난방에 필요한 에너지를 제로로 만드는 기술이다. 오래전에는 최신 기술로 소개되던 것이 요즈음에는 실용화되어 점차적으로 보급되고 있는 추세다. 그러나 이러한 건축에 관심을 가지고 있어도, 초기 비용이 너무 비싸고 기술적인 정보가 부족하여 도입에 엄두가 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이러한 건축을 보급화할 수 있을까. 일본 연구소 근무 시절을 일본건축학회의 Sustainable Building 보급 위원회에서 일 한 적이 있다. 그곳에서의 경험에 비추어보면, 친환경 건축이나 에너지 절약형 건물을 보급하기 위해서는 민간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정부가 친환경 건축물 인증제도(일본에서는 CASBEE)를 확대 보급하고, 친환경 건축에 대해 교육하고 계몽하는 노력이 무엇보다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일본에서는 ZEB의 보급을 위해 기본 설계 단계에서 건물의 에너지 검토하게 하기 위해, 세금 우대나 라벨링 제도 등을 통한 강한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것과 함께, 동적 에너지 시뮬레이션을 통한 에너지 절약 평가를 설계 단계에서 고려하도록 제도화 하려 하고 있다.
더욱이 ZEB를 실현하는 건물주에 대한 세제 감면이나 부동산 가치 증대를 위한 특화된 라벨링 제도를 실시하는 한편, 임대 건물 세입자에 대한 에너지 사용량 보고 의무를 강화하는 등의 노력을 하고 있다. 교육과 계몽에 있어서는 건물 환경 성능 통합 평가 시스템인 CASBEE (Comprehensive Assessment System for Building Environmental Efficiency)를 주택이나 건축물, 도시 계획에도 적용이 가능하도록 개정 및 보완하여 보급을 확대시키는 노력을 실시하고 있다. 이러한 ZEB를 위한 노력은 이웃나라 일본뿐만 아니라 미국이나 유럽에서도 다양한 제도와 사회 시스템의 형태로 정립되고 있어, 이제는 세계적인 추세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우리 정부 역시 건물 에너지 이용 합리화나 대체에너지 관련 법령 등을 통해 많은 노력을 실시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단순히 건물 에너지 절약을 위한 규제나 제도를 강화하는 것은 결국 건축비에 대한 부담을 증가 시키고 건설 경기를 둔화시키는 요인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친환경 건축 및 건물 에너지 절약 기술의 도입과 보급을 위해서는 친환경 건축에 대해 부동산 가치 평가에 대한 인센티브를 주는 제도나 보다 폭넓은 보조금 지원제도 등의 경제적 지원이 동시에 고려된 제도 정립이 요구된다. 아무쪼록 요즈음의 추위만큼이나 꽁꽁 언 건설 경기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보다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제도가 정립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