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인천에서 19년째 소규모로 서진건축사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다. 근래에는 코로나19 여파로 인한 경기 악화로 낙찰 건도 없고, 신규 입찰 공고도 거의 없는 편이다. 그리하여 이번에 처음으로 경기도 용인의 모 대학에서 실시한 최저 가 입찰제에 참여하게 됐다.
입찰 접수 및 참여를 하루에 다 하는 관계로 입찰
자가 많지 않을까 우려하면서 한편으로는 새롭게 도전하는 입찰에 설레는 마음으로 아침 일찍 인천을 떠나 모 대학의 입찰장으로 향했다. 최저가 입찰제의 프로세스를 모른 채.
교통체증을 뚫고 한 시쯤 학교에 도착해서 접수를 했다. 입찰 시작 시간은 두 시인데 내가 두 번째 접수자였다. 입찰 참여자가 생각보다 많지 않아 놀랐다. 그렇게 회의실에서 입찰 시간을 기다리다 드디어 두 시에 입찰이 시작되고 발주처에서 낙찰자 결정방식에 대해 설명했다. 총 7명이 참석했다.
기초 가격은 입찰 공고서에 기재돼 있으며, 발주처에서 조사한 예정 가격 대비 최저
가로 투찰한 입찰자가 낙찰받게 된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만약 예정 가격 이상으로 모든 입찰자가 투찰하면 유찰되고, 세 번 유찰되면 세 번째 최저가 입찰자와 시담해 낙찰자를 결정한다고 했다.
설명이 끝나고, 드디어 리모델링 설계용역 입찰이 실시됐다. 기초예가 8600만 원, 발주처 예정가격 5900만 원(자체 조사해 개찰 후 통보), 내 투찰가 5050만 원……. 낙찰가는 3850만 원으로 결정됐다. 이는 기초 예가 기준의 44%, 발주처 조사 예정가격의 65%로 낙찰된 것이다. 허탈감이 밀려왔다. 이런 입찰을 왜 하지?
아무리 현실과 동떨어져 발주처 예산에 맞춰 입찰을 하더라도 무리한 덤핑 입찰은 자제돼야 하며, 공정성이 담보돼야 한다. 게다가 이런 류의 덤핑 수주는 부실설계로 인한 건축물 안전과도 연결돼 문제가 심각하다. 발주처 최저가격 입찰 조건에 맞장구쳐 말도 안 되는 대가에 입찰해 낙찰되는 건축사가 있는 한 설계비 제 값받기 노력은 헛 구호일 뿐이다. 괜한 시간만 낭비했다는 생각이 파도처럼 밀려오면서 ‘아! 이래서 극심한 불경기임에도 불구하고 입찰 참가자가 소수이구나’라는 것을 깨닫게 됐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다시는 최저가 입찰에 참여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이런 제도를 왜 운영하는지, 왜 입찰자들에게 시간낭비 비용낭비를 하게 만드는지, 이런 상황을 이해할 수 없음에 자책했다.
최저가 입찰 개념은 최대한 싸게 건축하고자 하는 경제 개념에서 시작되어 현재 많은 건설공사에서 품질에 문제점을 유발하고 있어 차츰 폐지하는 것이 대세로 알고 있다. 싸다고 해서 결코 좋은 품질을 담보하지 않기에. 하물며 건축설계의 최저가 입찰은 창의적 아이디어가 생명인 건축 설계분야에서 어느 것 하나 확보되지 못하고, 오직 경제논리로만 해석되는 기형의 제도로서 도입 자체가 문제 있게 느껴졌다. 설계분야에서 오직 경제논리로만 해석되는 최저가 입찰제도가 폐지되기를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