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흡 동국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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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목조건축이 건축문화의 한가운데 자리를 잡고 있어 목재 전문가의 입장에서 솔직히 일본이 부럽다. 오늘날의 일본 목조건축이 있기까지 건축법의 규제개혁이 수없이 있었고, 이에 따른 우여곡절도 많았다. 특히 일본은 자연재해가 심한 나라다. 잦은 지진으로 상가지역의 한곳에서 난 불이 이웃으로 번져 마을 전체를 태우는 등, 목조건축은 화재에 대한 안전 확보가 어렵다. 이러한 이유로 1960년 이후, 건축법으로 목조건축을 일정한 높이 또는 규모 이하에서는 재료나 치수 등을 구체적으로 나열하고, 공통의 기술적 기반인 설계규정을 준수하도록 그 범위를 제한했다. 그러니까 설계규정인 ‘목조건축 표준시방서’에 의존하여 그 안전성을 확보 받도록 했다. 건축물의 규모·용도·입지에 따라 주요 구조 부분인 벽, 기둥 및 바닥에 일정의 방화성능을 요구하는 엄격한 설계규정이다. 그러나 1980년대 미국과 무역마찰에 의해 그 빗장이 풀리게 되었다. 당시 미국의 대일 무역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면서 양국 상호 간 해결방안을 모색하기 위한 MOSS협의(시장지향형 개별분야 협의)가 열렸다. 미국 측에서는 처음에는 쌀시장 개방을 요구했으나, 일본 측에서는 자국 농민들의 보호차원에서 쌀시장을 대신하여 목재시장을 개방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미국 입장에서 목재시장을 열어 준다고 해도 엄격한 설계규정 지향의 건축법이 존재하는 한, 실질적인 이득이 없다. 왜냐하면 미국이 일본 시장을 공략하려는 구조용집성재 등 공학목재는 표준시방서로는 설계의 범위가 이미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설계규정의 목재 사용규제 완화를 요구했다. 이에 맞서 일본 측은 “목조건축은 구조적으로 화재에 약하고, 지진 때문에 시가지 화재 대참사를 막을 수 없으므로 대규모 목조건물 따위는 말도 안 된다”고 저항했다. 그러나 미국 측에서는 “목조건물이 대규모 또는 고층으로 해서는 안 되는 이유는 뭔가? 만약 방화 상의 문제라면 불이 쉽게 붙기 때문인가? 불이 옮겨 붙는 속도가 빠르기 때문인가? 또 목재의 연소속도가 있기 때문에 타지 않고 남아있는 목재로도 건물이 붕괴되지 않는데, 구조내력이 불에 탄다고 상실되는가? 더욱이 이웃으로 불길이 번지는 연소 확대가 문제라면 그것은 건물 내부의 문제인가? 외부의 문젠가? 연소가 수평 방향 또는 수직 방향으로 일어날 때 피난안전을 확보할 수 있는 시간에 목조가 충족하지 못하는가?” 등의 문제점을 구체적으로 요구했다. 결론적으로 목재라도 건축이 요구하는 수준을 만족시키면 콘크리트나 철골과 다를 바 없다는 성능기준의 건축법으로 개정을 요구했다. 미국 측의 성능규정적인 요구 주장은 매우 합리적이어서 일본 측에서는 그 요구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건축법에서 1987년 목조 3층 주택 등에 관한 규제완화, 1992년에는 ‘준내화 건축물’의 성능을 충족시키면 주요 구조부에서 목조의 여부를 묻지 않겠다는 방향으로 규제가 완화되었다. 이후 일본은 목조건축의 성능규정화를 받아 들여 설계 자유도가 크게 향상되었다. 이러한 분위기는 곧바로 중·대규모 목조건축으로 이어졌고, 공공건축물의 목재 이용 확대로 이어졌다. 여기에 석고보드로 목재를 피복하거나 철골과 목재를 조합하여 불에 타도 타지 않고 남아있는 구조재가 붕괴에 견디는 내화구조를 개발하여 목재의 특성이나 최대한 의장성을 활용할 수 있는 기술도 개발하여 소비자의 만족도도 높여 주었다. 목조건축의 규제완화는 미국과 무역마찰에서 비롯되었지만 목조건축이 소규모에서 중·대규모로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이 규제완화로 건축용 목재가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도약할 수 있었고, 임업도 크게 활성화되는 전화위복의 계기가 되었다. 해외에서는 구조용집성판(CLT)이 개발된 이후 대형 고층 목조건축이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설계규정으로 제한된 상태에서는 기술개발이 어렵고, 이미 외국에서 개발된 목조건축의 기술을 도입할 수 없다. 구체적으로 건축법시행규칙 제9조3에 규정된 높이(지붕높이 18m, 처마높이 15m) 기준으로는 세계적 추이인 대규모 또는 고층 목조건축물의 수요를 맞출 수 없다. 목조건축업계에서는 오래 전부터 이를 완화해 줄 것을 꾸준히 요구해 왔었다. 국토교통부는 지난달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이제 국내에서도 “고성능 목자재 개발 등으로 구조·화재 등에 대한 안전 확보가 가능해졌으므로 규모제한을 완화하고 목조건축의 활성화를 유도한다”는 목조건축물 높이제한을 완화하는 건축법 시행규칙 개정을 예고했다. 늦은 감이 있지만, 목조건축에 새로운 시대가 이제 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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