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70년에 되돌아보는 대한민국 자유의 진격지, 다부

경상북도 칠곡군 가산면 다부동, 한국군과 미군이 1950년 8월 13일부터 30일까지 파죽지세로 진공해 오던 북한과 싸운 격전지다. 다부동은 왜관 북쪽 6.5km를 기점으로 369고지-수약산-족계산-신주막을 잇는 좌1선 13연대의 작전 지역으로, 6.25전쟁 시 격렬했던 전투 중 하나다. UN군이 낙동강을 접수해 방어선을 구축하자 인민군은 맹추격전을 전개했고, 낙동강 북부에서는 8월 5일 동강을 도하했다. 이때 낙동강을 담당한 인민군은 영천을 탈취해서 부산을 점령하고자 했다. 반면 제1군단은 마산을 탈취한 후에 부산을 점령할 계획을 세웠다. 일명 ‘8월 공세’가 시작된 상황이었다.

낙동강 방어선이 구축되자 김일성은 7월 21일 수안보 전선 사령부까지 내려와 8.15 광복절 기념행사를 대구에서 거행하겠다는 망상하에 북한군 5개 사단을 투입했다. 이에 아군은 왜관 303고지(작오산)-328고지(석적포남)-518고지(숲테미산)-839고지(유학산)-다부동-중구동에 이르는 백선엽 장군의 Y방어선을 구축해 적과 공방전을 벌였다.

“한 치의 땅도 적에게 빼앗기지 말라”

다부동 전투는 1950년 7월 29일 미8군 사령관 워커 중장이 “한 치의 땅도 적에게 빼앗기면 수많은 전우의 죽음이 발생함을 명심하고 끝까지 싸워 이겨야 한다”라면서 낙동강 방어선 사수를 명령했다. 이에 국군 제1사단은 1950년 8월 1일 낙동강을 도하한 지 3일 후 낙정리로 나갔다. 왜관읍 주민들에겐 소개령이 내려졌고, 북한군의 진격을 차단하기 위해 왜관 구철교를 폭파했다. 이후 왜관 동북쪽 작오산에서 게이 소장이 지휘하는 미 제1기병사단과 북한군 제3사단, 제105 기갑사단과의 대결이 시작됐다.8월 16일엔 UN군이 B-29 폭격기 98대로 융단 폭격을 감행했다. 북한군 제13사단 기갑부대 T-34탱크와 미 제25사단 27연대 M-26탱크와의 최초 탱크전도 이곳에서 벌어졌다.

55일 동안 아군은 1만 여명, 적군은 1만 7천 5백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그리고 9월 16일 천생산을 탈환한 후 잔적을 소탕했고 9월 24일에야 전투가 끝이 났다.결과적으로 백선엽 장군이 이끈 국군 제1사단은 북한군의 집요한 공격에도 불구하고 328고지 방어선을 확보하고 다부동을 방어해 대구와 부산을 지켰다. 또한 자유 대한민국을 공산주의로부터 막아내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이곳에 세워진 전승 기념비는 필자가 경상북도 회계과 영선계에서 건축직으로 근무할 당시 (1970년도 지사 구자춘) 설계·감리를 한 작품이라 감회가 깊다. 2020년 6월 25일 한국전쟁 70주년을 맞이해 가족과 함께 다부동 전승 기념관과 격전지를 돌아보는 기회를 가졌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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