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자재 기준강화하고, 건축·건설현장 화재사고 예방 대책 마련해야

4월 29일 오후 1시 32분경, 경기도 이천시 모가면 한익스프레스 물류창고에서 건설노동자 38명이 숨지고, 10명이 부상당하는 대형 화재사고가 발생했다. 화재진압 이후 수사본부 편성, 4월 30일 합동 현장 감식 등이 진행되면서 화재 원인과 건축 등 위반사항에 대해 수사가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수사본부에서는 즉각적으로 ▲건축 인허가 관련 철 ▲설계도 ▲공사일보 ▲구조도면 ▲건축도면 등 7종의 공사 관련 자료를 확보해 분석에 들어갔다.

화재발생 후 열흘 이상 지난 시점인 5월 11일 현재 이번 화재의 주요 원인으로 주목받고 있는 것은 건축물 마감재와 단열재 등 가연성 건축자재와 우레탄 폼 작업과 용접 등 위험작업 동시 진행 등이다.

지난 4월 29일 경기도 이천시 모가면 한익스프레스 물류창고에서 일어난 화재로 48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사진=경기도소방재난본부)
지난 4월 29일 경기도 이천시 모가면 한익스프레스 물류창고에서 일어난 화재로 48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사진=경기도소방재난본부)

◆ 여전한 안전불감증
    사라지지 않는 후진국형 화재사고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5월 8일 이천 물류창고 화재사고를 계기로 건설현장 화재사고 예방과 근원적 대책 마련을 위한 건설안전 혁신위원회 2기 킥오프 회의에서 이번 화재의 주요원인으로 지목받고 있는 가연성 건축자재와 폭발 우려가 높은 유증기가 발생하는 뿜칠작업 관리 강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천 화재사고를 통해 다시 한 번 지적되고 있는 건축자재에 대한 미흡한 안전기준, 건설현장의 안전관리 실태 점검, 원청 시공사에 대한 관리 감독 등의 문제로 후진국형 화재사고가 반복되고 있는 문제제기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고 할 수 있다.

실제 이번 물류창고 화재사고는 지난 2008년 발생한 이천 냉동물류창고 화재참사, 2017년 12월 충북 제천시 스포츠센터 화재, 2018년 1월 경남 밀양시 세종병원 참사 등 후진국형 화재사고를 떠오르게 한다.

화재사고와 관련해 한국노총은 2008년 40명이 목숨을 잃은 이천 냉동물류창고의 화재사고와 판박이처럼 똑같다고 특정했다. 노동자의 날을 이틀 앞두고 일어난 참사인 탓에 노동계가 즉각적인 반응을 보인 것이다. 한국노총은 “수차례 폭발음이 있었던 것으로 미루어 이번 참사 또한 우리 사회의 안전불감증을 그대로 노출 시키는 안타까운 사고로 기억될 것”면서 “우레탄 폼 작업 중 다른 복합적인 작업(용접작업 등)이 수행됐고, 공사현장의 안전보건교육도 미비했던 것으로 드러나고 있으며, 유해위험방지계획서에 의해 화재의 위험이 지적됐지만 이를 무시한 채 작업이 진행돼 예견된 인재라고 할 수 밖에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민주노총도 비슷한 입장을 보였다. 성명에 따르면 “우레탄 폼 작업의 유증기와 작업 중 불꽃으로 연쇄폭발이 일어났고, 샌드위치 패널로 화재가 확산돼 유독가스 질식으로 집단사망에 이르게 된 것으로 (화재원인이) 거론되고 있다”면서 “건설업의 다단계 하도급 구조로 위험한 작업들이 동시에 진행하게 되고, 기본 안전조치가 묵살되는 현장의 현실이 달라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경기도 이천 물류창고 화재 사고 현장 (사진=경기도소방재난본부)
경기도 이천 물류창고 화재 사고 현장 (사진=경기도소방재난본부)

◆ ‘내부 단열재에 대한
   화재성능 기준 없었다’…
   사후약방문식으로 이뤄지고 있는
   화재안전 기준

2008년 이천 냉동창고 화재참사 역시 우레탄 폼과 샌드위치 패널과 형식적인 소방 점검 등이 주된 원인이 되어 40명이 사망하는 사고였고, 때문에 안전관리 소홀 등의 이유로 건설공사 현장총괄소장 등이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또한 지난 2008년 이천 냉동창고 화재사고 시 설계자이자 감리자인 K 건축사사무소와 시공자 간 동일 계열사 논쟁이 일어나면서 공사시공자 본인 및 계열회사를 공사감리자로 지정한 자에 대해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처벌규정이 건축법에 신설됐다. 전문가들은 인재(人災)를 통한 유사사고가 이렇게 발생하고 있는 이유로 내부 단열재에 대한 화재성능 기준이 마련되고 있지 않아 창고와 공장 등에서 사용되는 가연성 샌드위치 패널, 그리고 안전보다 비용절감이란 경제논리가 우선돼 위험 작업들이 동시 진행된 점 때문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건축물 마감재와 관련해 현재 3층 또는 9미터 이상 모든 건축물은 외벽 마감재료와 단열재를 700도 온도에서 약 5분 정도 연소가 지연돼 피난시간을 확보할 수 있는 난연성능 이상을 사용해야 하고, 600제곱미터 이상의 창고는 내부 마감재료도 난연성능 이상을 사용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나마 대형화재사고가 일어날 때 마다 사후약방문식으로 규정이 강화된 덕분이다. 일례로 지난 2008년 이천 냉동창고 화재 이후 3,000제곱미터 이상의 창고의 내부 마감재료는 난연성능 이상을 사용하도록 했고, 이후 그 대상을 600제곱미터 이상 창고로 확대한 바 있다. 2015년 의정부 대봉그린아파트 화재 이후, 6층 또는 22미터 이상 건축물의 외벽 마감재와 단열재에 난연성능을 적용했고, 제천·밀양 화재 이후 3층 또는 9미터 이상으로 그 대상을 확대했다.

하지만 외벽과 달리 벽체와 내부 마감재 사이에 설치되는 단열재에 대해서는 명시적인 규정이 없다. 국토부도 지난달 화재사고 이후 관련 문제를 직시하게 됐고, 내부 마감재와 관련 명시적 규정이 없어 공사 간 성능이 미흡한 자재가 사용된 것으로 파악했다. 때문에 건축물 마감재 및 단열재와 관련된 기준을 개선하고, 자재 성능 확인(모니터링) 등 점검도 강화해 이번과 같은 사고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 계획단계부터 시공까지
    주체별 관리 중요,
    감리권한·사업주 시공사에 대한
    처벌 등 책임 강화해야

공사 막바지 준공일을 맞추기 위해 위험작업을 동시 진행하는 관행에 대한 개선과 함께 비용을 우선하는 사업주와 시공사에 대한 책임 강화도 요구된다. 소방관 출신의 오영환 21대 국회의원 당선자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번 화재는 안전보다 비용절감이란 경제논리가 우선된 것이 근본적 원인이라고 밝혔다. 그는 “공기단축을 위해 위험 작업들이 동시 진행되고 있는 현실”이라면서 “사업주, 시공사에 의해 대다수 현장의 안전문제는 충분히 고려되지 못하고 있고, 인화성 물질 등 취급 시에 화기작업, 용접작업 등이 동시에 이뤄질 수 없도록 강력히 제한하는 조항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특히 안전조치 의무를 지닌 사업주에 대한 벌칙조항 강화를 강조했다. 오 당선인은 “사업주가 폭발성, 발화성 및 인화성 물질 등에 의한 위험예방을 위한 필요한 조치 불이행시 5년 이하 징역 또는 5,000만 원 이하 벌금으로 되어 있는 현재 법률 조항의 처벌 규정을 5년 이상의 징역형으로 강화하는 등 본질적인 책임을 다하게 해야 한다”고 밝혔다.

실제 발주처와 시공사에 대한 수사가 강도 높게 진행되고 있다. 시공사, 발주처인 한익스프레스 등 관계자 29명에 대한 출국금지가 내려졌고, 현장사무소와 시공사에 대한 압수수색과 함께 관계자의 휴대전화, 노트북 등에 대한 디지털 포렌식 작업도 진행되고 있다. 구체적인 협의는 확인되지 않은 가운데 확보된 설계도면과 공사일지의 분석 등 감리업무에 대한 수사도 진행됐다.

익명을 요청한 한 건축사는 “이번 화재사고는 일면 구조적인 착취에 노출되고 있는 건축사의 실태를 보여주는 계기이기도 하다”면서 “현장의 안전문제보다 공기단축, 비용절감에 목메는 건설 노동자들과 공공부분에서 업무를 수행하고 있는 건축사의 입장이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고 소개했다. 이어 감리업무와 관련해서도 “실제 공사 현장에서 공정 진행 책임은 발주처와 시공사 간 비용문제로 귀결되고 있고, 이것이 사고로 이어지고 있다”면서 “사업주와 시공사에 대한 책임과 처벌, 건축물의 안전관리를 위한 감리자의 권한 문제 등 근본적인 사고방지를 위한 제도정비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한편, 이와 관련 정부 관계자는 “건설현장의 안전관리 사각지대를 해소하고 지속가능한 안전관리 기반을 조성할 것”이라면서 “계획단계부터 시공과정까지 주체별 안전관리의 권한과 역할·책임 및 처벌 등을 총괄 규정하는 건설안전특별법 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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