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된 사고 간 근본 개선책 없이 규제만 남발, 경제논리에 설계·감리자 책임 가중’
가중되는 책임에 비해 업무대가 논의는 전무
국제기준 맞추기 위해 등장한 건축사 징계, 조직 내 윤리위원회 가동으로 자정 가능

지난 4월 건설현장 노동자 38명이 희생된 경기도 이천 물류창고 화재 책임자들이 최근 구속됐다. 수원지법 여주지원은 지난 6월 24일 영장실질심사에서 발주처와 시공사 등 관계자 8명을 업무상 과실치사상의 사유로 구속했다. 여기에는 감리단 인원도 포함됐다.

경기남부경찰청 광역수사대 관계자는 29일 본지와의 통화에서 “현장 감식과 관계자 조사를 통해 확인된 부분을 보면, 공기 단축을 위해 화재 당일 평상시보다 약 2배 많은 67명의 근로자가 투입돼 지하 2층에서 옥상에 이르기까지 동시에 많은 종류의 작업이 진행됐다”면서 “또 불법 재하도급, 임의시공, 화재 및 폭발 위험작업의 동시시공이 이뤄졌고, 안전을 도외시한 피난대피로와 방화문 폐쇄, 안전관리자 미배치 등 다수의 안전수칙 미준수 사실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구체적이지 않고,
   불분명한 업무 규정으로 처벌 용이

수도권에서 건축사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는 김 모 건축사는 “대부분의 건축사가 건축물을 설계하고 감리하는 일이 국민의 안전과 직결된다는 사실은 충분히 인지하고 있을 것”이라고 전제하고, “가설지지대 문제로 촉발된 잠원동 건물 붕괴사건을 비롯해 이번 이천화재 사건의 수사과정을 보면 발주자와 시공사가 경제적인 이윤을 목적으로 공기단축과 임의시공을 반복하고 있음에도, 건축사가 마치 모든 공사 현장의 총 책임자 임무를 수행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닌지 의문이 있다”면서 “정부 부처 한 곳에서 건설사의 설계업 허용을 말하며 건축사의 권한을 축소하려고 하는 상황인 걸 감안하면, 대체 건축사의 권리는 무엇이며 책임은 어디까지인지 되묻고 싶다”고 말했다.

지난 2017년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사고로 건물 감리자와 업무대행 건축사 등이 입건됐다.
지난 2017년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사고로 건물 감리자와 업무대행 건축사 등이 입건됐다.

그는 이번 이천사고 외에도 사용승인 이후 8층과 9층 테라스가 불법으로 증축됐던 충북 제천시 스포츠센터 화재참사에서도 감리를 담당했던 건축사가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형, 사용승인 업무대행을 수행한 건축사 역시 처벌을 받았다고 밝히고, “건축사법에서 규정한 공사감리 정의가 불분명하고, 범위가 너무 넓어 사건·사고 시 처벌 대상에 포함될 여지가 많다”고 지적했다.

실제 건축사법에서 말하는 공사감리는 ‘자기 책임 아래 건축법에서 정하는 바에 따라 건축물, 건축설비 또는 공작물이 설계도서의 내용대로 시공되는지 확인하고 품질관리, 공사관리 및 안전관리 등에 대해 지도·감독하는 행위’를 말한다. 김 모 건축사는 “품질관리와 공사관리, 안전관리라는 말은 해석하기에 따라 공사 전반을 말하는 것일 수도 있고, 특정할 수도 있는 중의적인 표현인 탓에 법리 해석 간 코에 걸면 코걸이고, 귀에 걸면 귀걸이가 될 수 있다”면서, “권한과 전문성 등 모든 점을 명확하게 규정할 법적 용어로는 적합하지 않는 부적절한 표현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스포츠센터 사고의 경우처럼 현장조사와 검사 그리고 확인업무의 대행 시에도 문제가 될 소지가 충분하다. 업무대행은 말 그대로 허가권자가 현장조사·검사 및 확인업무를 건축사에게 대행하는 것이다. 사용승인 신청이 있게 되면 허가권자는 건축현장을 조사·검사하고 확인업무를 해야 하지만, 전문성 등의 이유로 각 허가권자들은 건축사에게 업무대행을 요청하고 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허가권자는 현장조사 등 관련 업무 외 추가적인 부분을 요구해 건축사와 건축주간 분쟁이 야기되고, 이 일로 징계 또는 심한 경우 수천만 원의 배상과 인명피해라도 있게 되면 수억 원에 이르는 손해배상, 나아가 형사책임을 지는 건축사가 발생하고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건축사에게 집중되는 처벌,
   업무 추진 간 동기부여 필요 

이 같은 법적 규정이 편향적인 정부 인식을 낳을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2014년 연이어 발생하는 건축물 안전사고로 인해 정부는 건축물 안전강화 종합대책을 내놓게 된다. 당시 28개 대책들을 쏟아낸 태스크포스(TF)가 가장 크게 주목한 것이 건축 전 단계부터 안전을 강화하겠다는 것이고, 타깃은 다름 아닌 건축사였다는 것이다. 설계자와 감리자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내용이 핵심이 되었기 때문이다.
서울특별시에서 근무하고 있는 A 건축사는 “건축사만을 타깃으로 할 것이 아니라 공사비 절감을 위한 무리한 공기단축과 설계도에 없는 임의시공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겠다고 나서면, 부실시공과 안전사고를 대부분 막을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한다”면서, “건축사 입장에서 보면 규정과 책임은 지속적으로 더해져 가지만, 이에 따르는 대가기준은 불분명해 관련 업무수행이 오히려 건축사사무소의 운영의 어려움을 가중시키는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점도 헤아려 줘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잦은 사고로 신규 규제가 적용된다면 마땅히 관련 업무대가 논의도 이뤄져야 했지만 그런 환경 마련에는 인색했던 것이 사실이었지 않나?”면서, “무한책임과 처벌에만 집중할 것이 아니라 업무를 성실히 수행할 최소한의 동기부여와 함께 1인 건축사사무소가 많은 업계 현실을 고려한 성의 있는 정책 제시도 이뤄지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국제수준의 건축사,
   징계부분도 건축사 자정노력에 기대해야

사건·사고 간 일어나는 형사책임과는 달리 건축사에게 적용되고 있는 행정청의 징계권에 대한 논의도 필요하다는 일부 의견도 있다. 다른 전문 자격자들처럼 자격자 대표집단인 협회 내 윤리위원회 등의 기구를 통해 징계혐의 사실에 대해 조사하고, 판단하자는 취지이다. 현재 건축사징계는 각 시·도지사가 국토교통부(이하 국토부) 장관에게 건축사의 징계를 요청할 수 있고, 시·도지사의 징계처분에 불복해 이의신청한 경우에 대해 국토부에 설치된 건축사징계위원회에서 재심을 의결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 2016년부터 최근 3년간 징계위원회 회의가 개최된 것은 총 4회이고, 2018년부터 2019년 6월까지 건축사징계 심사를 위해 회의가 개최된 것은 단 1회에 그치고 있다.

(자료=국토교통부)

경기도 성남시에서 건축사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는 B 건축사는 “지난 2011년 건축사가 위법한 행위를 할 때 징계위원회의 의결에 따라 징계를 받도록 하고, 국내 건축사자격제도를 국제 기준에 맞게 개편하는 내용의 건축사법이 개정됐다”면서 “하지만 당시 국제기준이던 영국은 건축사 등록·유지 업무 수행기관인 건축사등록원(ARB)을 관련법에 명시하고 등록 회원의 징계 여부를 공개하고 있었고, 프랑스는 건축사협회에 의무가입을 통해 자격증 대여 시 허가 취소 등 강력한 징계를 받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는 “건축사의 역량은 국제적 수준에 도달하고 있지만, 이른 바 윤리 문제 등 행정적 프로세스 등은 국제 기준에 미흡한 수준이다”고 밝히고, “필요에 의해 제도의 일부만 취사선택할 것이 아니라, 제도가 전반적으로 선진화 된 것이라면 시험 등 건축사 배출부분과 더불어 건축사 배출 이후의 관리적 차원의 선진 시스템인 의무가입제도 역시 도입했어야 하는 것이 마땅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기본적 윤리위반 사안을 집단 내에서 공공의 관점으로 판단한다면, 전문가 집단은 보다 신뢰받는 자격자로, 또 관련 윤리행정 역시 전문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을 할 것이라는 기대를 충분히 갖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김주덕 법무법인 태일 대표변호사는 “변호사협회의 경우 과거와 달리 변호사 징계혐의사실에 대한 조사를 하는 등 징계권한을 위임 받았는데, 이는 회원과 협회가 꾸준히 건의하고 투쟁한 성과이다”라고 밝히고, “건축물 설계와 감리는 공공의 성격이 강하고, 공익과 직결돼 징계를 위한 판단과정에서 엄격한 기준이 적용될 수 있고, 그런 면에서 보면 건축사들은 협회를 구심점으로 권익 보호에 나설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김 변호사의 지적대로 변호사협회는 의무가입을 통해 회원들의 의견을 하나로 모을 수 있었고, 현재는 공익적 역할과 함께 회원의 권익보호에도 앞장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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