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사 설계업 허용은 건축사가 건축물 안전 책임지게 한 건축사법 입법 목적에 위배, 국민안전 사회적 가치 훼손”

건설사 설계업 허용 “설계의도 구현·감리 감독기능 무력화하는 시도”

국민의 행복한 미래를 담보하는 건축물의 안전은 어떤 이익과도 타협할 수 없고, 건축을 위한 설계 등 일체의 행위에는 고도의 전문성이 요구된다. 도시화되고 복잡해진 생활환경과 기후변화 등으로 다양한 형태의 재난과 안전 문제가 대두되면서 건축안전에 더욱 관심이 집중돼 법제화에 대한 요구도 높아지고 있다.
‘국민 안전’이라는 사회적 가치가 국가적 과제로 여겨지는 때 건축물의 안전성과 공공성에 반하는 일이 최근 일어나고 있다. 건설사의 설계업 허용 관련 움직임이 그것이다.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가 지난 3월 올해 업무 추진계획을 통해 건축설계업을 시공사에게 허용하는 규제 개선안을 내놓겠다고 발표했다. 경제적 측면에서의 규제완화 계획을 시사한 셈인데, 근본적으로 건축사법에 따른 전문자격사의 고유권한을 칸막이로 정의하는 게 과연 타당한지, 경제성의 가치를 국민의 안전이라는 사회적 가치에 우선해야 하는지에 대한 비판이 나온다.

◆ 불법 자격대여 횡행하고,
   감시·감독기능 축소 또는 면죄부 우려

건축계는 공정위가 말하는 규제가 아니라 본업 분리라는 측면에서 바라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사회적 공공성을 확보해 근린과의 공유를 이끌고, 이를 기반으로 하는 설계가 건축사의 업역이고, 시공은 디자인과 설계를 표현하고 구체화하는 수단이라고 봤다. 세계적으로 설계와 시공을 별도로 구별하고 있는 점 역시 감독자의 권한으로서의 설계와, 설계내용에 따른 시공을 올바르고 안전하게 하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따라서 건설사에게 설계업을 허용한다는 것은 경제적이고 빠르게 공사를 하려고 하는 DNA의 숨은 위험성을 간과하는 것이자, 경제적 이익을 극대화 하려는 건설사의 이해에만 집중한 편협한 대응이 아닐 수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정부에서 규제개선이라는 명목으로 수차례 요구가 이뤄지며, 제도상 건설사들의 진입규제 완화와 일정부분 참여가 가능해진 점도 주목했다. 건축사법 시행령 제23조에 따르면 법인이 건축사사무소개설 신고를 하려는 경우 대표자가 건축사야 하고, 건축사가 아닌 사람이 건축사와 공동으로 설립하고 20명 이상의 건축사가 속한 법인이 연면적 합계가 10만제곱미터 이상, 국가나 지자체가 설계·시공 입찰방식으로 발주하는 건축물 등 국토교통부령으로 정하는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한국법제연구원은 ‘건축물의 공공성 및 안전성 확보를 위한 전문직 활성화방안 연구’에서 “건축사는 의사, 약사, 변호사, 법무사 등 다른 전문자격에 비해 진입장벽이 가장 낮은 수준이다”면서 “이러한 진입규제 완화에도 불구하고 건설업계는 계열사수 증가 및 고용 비용부담 등으로 건축사사무소 설립을 추진하지 않고, 주로 사실상의 자회사 또는 하도급으로 운영하며 기존 주장을 반복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건축계 역시 제도가 마련되어 있지만 활용한 사례가 거의 없어 유명무실한 상황임에도 재차 설계업 허용을 거론하는 점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 전개라고 지적하고 있다.

건축관계자들은 불법 면허 및 자격대여가 더욱 성행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한 건축계 관계자는 “현재 불법 자격대여 해법들도 미봉책일 뿐인데 겸업이 이뤄지면 건설 면허대여 문제가 더해져 면허 및 자격대여가 더욱 횡행해 불법천국이 될 것이다”고 말했다. 또 강화해야 할 감시·감독권한이 약화되거나 축소되는 면죄부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도 꼬집으며, “대부분의 건설 안전사고가 중소형 현장에서 발생한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A 건축사는 “시공의 설계겸업 허용은 기존 제도와 정책과는 모순된 또는 대치되는 일임이 분명한데, 왜 이런 무리수를 두는지 모를 일”이라면서 “엄연히 다른 분야이고 그래서 유사업종이라고 해석한 칸막이도, 규제완화에도 해당하지 않는 소모적인 이슈일 뿐이다”고 강조했다.

◆ 건축사는 전문자격자…
   헌법재판소, ‘고도의 전문성과
   안전성 확보 필요’

우리나라는 건축사와 관련해 건축사법이라는 단독법을 두고 건축사의 자격과 역할을 규정하고 있고, 건축사법 제2조에 건축물의 설계와 공사감리 등의 업무를 수행한다고 밝히고 있다. 건축사는 이를 근거로 볼 때 특정 직종의 직무를 수행하는데 필요한 지식과 기술의 습득정도를 나타내는 전문자격자로 규정된다. 이와 더불어 공공성에 대한 과제도 뒤따른다.

헌법재판소는 과거 “건축사에게는 고도의 전문성과 사회적 책임이 요구되고, 건축사의 업무내용과 전문성, 건축의 안전성을 확보할 필요성이 매우 큰 점을 인정한다”면서, “건축사 자격제도에 개인의 영리추구보다는 공공성이 부여돼 있다”면서 건축사의 공공의 역할과 책임을 강조한 바 있다. 이처럼 건축과 관련한 가장 중요한 이슈가 건축물의 안전성과 공공성이라는 점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박광동 한국법제연구원 연구위원은 같은 보고서에서 “건축사법은 건축물의 안전성과 공공성 그리고 시민의 경관 권리의 보장과 도시 이미지 제고를 위해 건축물 등과 관련된 위험을 건축사에게 분배하고 있다”면서 “이는 무자격자인 사람이나 법인에 의한 설계나 감리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증가되는 위험과 비효율을 차단하고 건축물의 안전성과 공공성을 확보하기 위해 입법적 개입을 한 것이다”고 말했다.
계속해서 “자격요건을 갖추지 못한 건설업자에게도 건축물에 대한 설계와 감리를 수행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은 입법적 개입을 통한 위험분배에 관한 입법자의 의사를 망각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한국법제연구원은 국가입법정책 지원과 법률문화 향상을 목적으로 설립된 국내 유일의 법제전문 국책연구기관으로 1990년 7월 개원 이후부터 현재까지 연간 300여 종의 입법관련 연구보고서를 발간했다. 특히 주요 정책현안에 대해 실효성 있는 입법대안을 제시하면서 공신력을 크게 인정받고 있다.

최근 해외 언론에서는 코로나19 사태 대응과 관련 질병관리본부 등 국내 보건 전문가들의 역할을 높이 평가하는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전문성을 갖춘 전문가가 국가 위기발생 시 어떻게 국민의 안전을 책임지는지를 단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건축사도 다르지 않다. 지진과 재난으로부터 안전한 건축물, 또 주위 환경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경관을 만들어 공간복지를 창출하고, 국민들의 지근거리에서 공동체를 포용하는 창조자의 역할을 충실히 해오고 있는 것이다.

대한건축사협회 관계자는 “법이 정하고, 국민이 인정한 건축사의 전문성을 사익화하고, 경제성의 논리에 휘둘리게 할 경우 전문가의 권위는 추락하고, 전문자격제도 등 시스템의 신뢰를 붕괴시켜 결국 피해는 국민에게 돌아가게 될 것”이라면서 “경험과 지식이 풍부한 건축사들이 현재처럼 설계와 감리를 안정적으로 진행하는 것이 건축물의 안전성과 공공성을 제고할 수 있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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