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의 사회성·공공성 구현, 경직된 건축 정책 벗어야 가능하다

세계는 지금 ‘건축의 사회성·공공성’에 주목, 건축사의 역량 어느 때보다 절실 박관희 기자l승인2019.12.16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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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건축의 사례 중 하나-뉴 카버 아파트 (사진 = skidrow.org 캡쳐)

우리나라 인구 10명 중 9명은 도시에 거주한다. 인구가 몰리고 산업이 집중되면서 도시는 급속한 과밀화 현상을 겪고 있다. 안정적인 주거환경이 화두이자 지상과제이다.
쪽방촌, 고시원 등으로 내몰리며 소외되고 방치된 이들의 주거 기본권 보장이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도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이를 위해 사회주택 등 공공주택의 보급이 더욱 활성화되어야 하고, 그 중심에는 공공성을 기반한 건축에 대한 가치변화가 요구된다는 진단이다.

지난 11월 승효상 국가건축정책위원장은 2019 대한민국건축사대회 기조강연을 통해 당나라 문인 유종원이 쓴 재인전을 언급하며 건축사를 공공에 관한 일을 하는 사람으로 규정했다. 건축물도 마찬가지이다. 개인이 집을 짓더라도 건축물과 공간은 모두에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모든 건축물은 공공성을 띠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논리이다.
석정훈 대한건축사협회장의 개회사를 통한 ‘신건축선언’도 이와 맞닿아 있다. “건축의 가치는 경제적 가치를 뛰어넘는 사회적 가치이자 공공의 가치여야 하고, 이를 잘 수행하기 위해 건축인 모두가 사회적 윤리를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또 “공공주택은 주거의 가치에만 머무르지 않고 사회 공공적 가치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계 건축계의 흐름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단순 조형성을 넘어 사회성과 공공성에 더 큰 의미를 두고 있는 상황이다.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건축의 사례도 늘어나고 있다. 해외사례로서 미국의 건축사인 마이클 몰트잔(Michael Maltzan)은 명망 높은 박물관과 고급스러운 개인 주택 프로젝트로 명성을 쌓았지만 최근에는 도시의 빈민들에게 쉼터와 숙박시설을 제공하는 데에 훨씬 더 가치를 부여하고 있다. LA 카운티 보건부의 응급처치를 자주 이용하는 노숙자들에게 주택을 제공한 크레스트 아파트나, 만성질환과 장애가 있는 노숙자 노인과 성인을 위한 공공주택인 뉴 카버 아파트 등이 그의 애정과 열정이 담긴 대표작이 되고 있다.

후지모토소우 건축사 등이 참여한 화이트 트리는 프랑스 몽펠리에시 시민을 위해 지어진 공공지원주택이자 고층 건축물이다. 레스토랑, 아트 갤러리, 사무실 등 공용공간을 갖추고 있고, 새로 개발된 지구와 구도심의 중간에 위치해 현재와 과거를 잇는 가교의 역할은 물론 유산으로서의 건축물이 갖는 역할을 다하고 있기도 하다.

국내사정은 해외의 사례와 다소 차이가 존재한다. 문제는 경직된 정책 시스템과 사회적 시선이다. 아직까지 주거와 건축에 대한 공공성 개념이 부족하고, 규제일변의 행정이 가장 큰 문제이다. 우리나라는 지자체에 건축허가를 신청할 경우 규모에 따라 차등이 있지만 대규모 건축물일 경우 보통 7단계의 심의 과정을 거쳐 최장 450일 이상이 걸려야 건축허가를 받을 수 있다.

건축사업계에서 지나칠 정도로 복잡하고 불필요한 인증절차라는 말이 괜한 넋두리가 아니다. 일부 건축사들에서는 심의통과에 따르는 막대한 비용, 또 주관적 가치판단이 영역이 아님에도 심의과정에서의 지나친 개입과 부정부패 등의 사례도 빈번한 현실을 안타까워하기도 한다.
전문가들은 과도한 규제로 창의적인 설계 반영이 어렵고, 자연스럽게 공공성 확보에도 애로점이 발생한다고 입을 모았다.

다만 서울시의 주거모델인 사회주택 등이 건축의 공공성과 사회성을 구현하는 모델로서 불쏘시개가 되고 있는 점은 작은 희망이다. 사회주택은 시민이 부담 가능한 임대료로 오랫동안 안심하고 살 수 있는 주택이다. 공공에서 토지를 장기간 빌려 민간사업시행자가 건물을 지어 시민에게 장기 임대해주는 유형이 있고, 또 노후 된 주택을 리모델링해 주거환경을 개선하고 안정적인 주거를 공급하는 시스템이 있다. 이 과정에서 건축사의 역량이 십분 발휘되고 있다. 입주자 맞춤형 디자인과 설계를 통해 공공주택의 혁신을 이끌고 있기 때문이다. 리모델링 과정에서 다양한 공유공간을 제공하고, 개인의 프라이버시는 존중하는 설계로 값싼 주택이라는 공공주택의 편견도 희석시키고 있다.

사회주택으로 주거공공성을 실현하고 있는 건축사들도 점차 확대되는 추세이다. 수익을 기대하기 보다는 낮은 임대료로 국내 주거 환경을 제공하는 일이 건축사라는 전문가의 일이라는 판단에서다. 주거 공공성 확보를 위해 공유 공간, 커뮤니티 공간, 공방과 작업실 등을 설계해 주거환경을 개선할 수 있는 이는 유일무이 건축사만이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건축사는 “후대의 자산이 될 수 있는 건축은 공공재적 성격을 띠어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그런 부분에서 아직은 부족한 실정이다”면서 “정부와 서울시 등 지자체에서 주택문제의 해결책 내지는 혁신적 대안으로 사회주택에 의미를 부여하고 있지만, 건축사의 업무영역을 보호하고 제도를 완화함으로써 손쉽게 주택문제를 해결하는 시발점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박관희 기자  lookpi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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