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세종 신청사 설계공모 '심사위원장'을 사임한 김인철 건축사

▲ 김인철 건축사

Q. 왜 심사위원장직을 사퇴하셨는지요.

심사결과를 받아들고 “어찌해 우리는 이 모양인가”라는 생각에 안타까웠고 슬펐다. 국가의 백년대계를 세우는 상징적 프로젝트임에도 심사위원은 발주처의 의도에 맞출 인원 채우기에 동원된 느낌이었다. 이참에 “잘못됐다”는 문제제기를 해야 무엇인가 바뀌겠다는 판단이 사퇴한 이유였다. 주무관이 소매를 잡고 말렸지만, 위원장으로 당선작 선정 이유를 발표해야하는데 도대체 설명할 수가 없는 결과였다. 결론적으로 우리 사회가 전문성의 인정에 인색한 것, 여기에 문제의 원인이 있다고 본다.

얼마 전 만난 고위 공직자가 “공공건축에 매년 수십조 원 예산이 투입되는데 왜 아직까지 좋은 건물이 나오지 않느냐”고 물었다. 나는 설계자의 문제도 있지만, 이 지경까지 오게 된 사회적 분위기를 문제 삼아야 한다고 답했다. 압축성장 과정에서 건축과 도시에 대한 본질적인 고찰 없이 발주가 이뤄져왔던 것이 지금의 문제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중앙일보와의 인터뷰 말미에 기자가 “후폭풍이 심각할 텐데 왜 그러셨나요?”라고 물었다. 누군가는 반대했다는 기록이라도 남겨놓아야 하지 않겠냐고 했다. 오늘의 건축은 후손들에게 남기는 유산인데, 이 시대가 어떠했다는 증거를 남기고 싶었다. 방관하는 것도 직무유기가 아니겠는가.

Q. 오래된 관행을 바꾸기 위한 어떤 대안이 있을까요.

행복청 총괄건축가를 맡고서 설계경기제도의 문제를 바로잡을 여럿 대안을 제시했지만 공무원들은 지금까지 해온 관행을 넘어서는 것에 멈칫거렸다. 일단 수긍하더라도 수용하는 순간 그동안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공무원의 순환보직제도는 전문가를 만들지 않는 구조다. 프로젝트 진행 중에 담당자가 수시로 바뀌는 데 어떻게 전문성이 생길 수 있는가. 이번에도 총괄건축가와 의논한 사안을 집행해야 하는 담당국장이 도중에 바뀌었다.

시간을 재촉하며 급박하게 추진한 것도 문제다. 완공 시점이 정해져 있으니 서둘러야 한다고 위원회 몇 번 하고 국제설계공모가 발표됐는데 졸속이 아닐 수 없다. 기획의 미비가 초래하는 결과는 말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심사위원은 7명 중 행안부가 3명, 행복청이 4명을 추천했다. 이중 2명은 행안부와 행복청의 공무원이다. 설계변경에 따른 예산증액이 빈발해 기술적인 것도 체크해야 한다며 엔지니어도 1명 포함시켰다.

여태껏 관행이 그러했다는 것이다. 반대했지만 건축 설계경기 운영지침상 문제가 없다고 했다. 결국 심의의 초점은 건축이 아니라 시설물이 된다.

정말 답답한 것은 심사에 어떤 작전이 있었다면 증거가 필요한데 물증이 없다는 점이다. 심정적으로 개연성은 있으나 수 십 년 동안 만들어진 암묵적인 카르텔을 무슨 수로 증명을 하겠는가.

행안부와 행복청에서 “법규정상 문제없다”라고 하는데, 이를 고치자면 이참에 이러한 사안을 여론화·공론화시켜 판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번에도 누군가 아우성치다가 끝나고 말 것이다.

Q. 수주에 급급해 발주처 코드에 맞춰 적당한 걸 양산하는 것도 문제입니다.

건축계의 내부문제를 살펴보면, 대형사무소는 건축사 개개인에게 디자인의 크레디트를 주지 않는다. 왜 대형사는 대표자 1명이 디자인 크레디트를 모두 가져야 하는가. 그러니 설계 프로젝트를 담당하는 책임자는 자긍심을 갖지 못한다. 대표자도 책임의식이 없다. 그렇게 전문가 없는 건축이 생기는 것이다. 외국처럼 작가와 엔지니어링 조직이 코웍(co-work)하면 좋겠지만, 우린 그것이 안 되고 있다. 대형사무소도 내부에 작가를 키워야 한다. 조직을 유지하려면 당장의 수주가 급선무이겠으나 조직의 힘으로 발주처의 코드를 변화시키는 시도는 왜 하지 않는지 답답하다.

또 우리는 설계를 진행할 때 온갖 심의부터 시공상세도까지 한 건축사가 전부 책임진다. 분리감리를 하더라도 제대로 된 건축사라면 현장에 계속 가려할 것이다. 외국은 개념을 만들고 아이디어를 개발해 제안하면 그것 모두를 해당분야의 전문가들이 해결해준다. 반면 우리는 새로운 시도를 추진하기에 너무 힘든 구조이다. 무난한 판박이는 그렇게 양산된다.

Q. 심사위원을 기계적으로 분할하는, 심사위원 풀(Pool) 문제도 논의해봐야 합니다.

심사위원 풀(Pool)은 고육지책으로 만들어진 이상한 제도다. 공공건축가 제도가 대안으로 운용되고 있지만 멀리 보면 그것도 한시적이어야 한다. 특정 집단이 존재하는 이유는 위기상황에서만 허용된다. 언제까지 그래야하는가. 먼저 발주처가 그 프로젝트를 판정할 적임자가 누구인지 선정할 수 있는 안목을 가져야 한다. 우리는 심사를 일종의 권력으로 본다. 위촉된 심사위원도 심사위원으로서의 양심, 자격, 능력이 있는지 자문해보고, 감당할 프로젝트가 아니라면 사양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도 심의할 지식과 경험을 갖고 있는지에 대한 반성이 필요하다. 교수도 업적점수를 채우기 위해 참여하거나 학문적 성과보다 지위로 권위를 만들려고 하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공무원의 소명감과 전문성 부족, 설계경기의 투명성을 담보할 심사위원 구성문제, 그리고 이를 활용하는 소위 작전 등 모든 문제를 테이블에 올려놓고 논의해보자.

Q. 후대에 남길 건물인데, 그렇게 안 되는 구조적 모순들이 이번 기회에 드러나야 할 것 같습니다.

전문성에 대한 사회적 포용력 부재, 이것은 불신과 연결된다. “못 믿겠으니 우리가 관여해야 된다”는 것에서 신뢰를 바탕으로 전문적 역량이 발휘될 수 있는 판이 만들어져야 한다. 국가건축정책위원회도 정식으로 이 안건을 논의한다고 한다. 청와대도 이번 사안에 깊게 관심을 갖고 있다고 들었다. 대의적인 것에 건축계가 협력하고 대응하기 바란다. 구체적인 행동으로 나가야 한다. 오늘의, 그리고 이 땅의 건축이 바로서기 위한 기본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대담 편집국장, 글·사진 장영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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