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해지는 건축사 업무와 역할, 신속 대응할 컨트롤타워 부재서 벗어나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국내 건축서비스산업 사업체수 3만6,188개, 종사자수 약 23만 명. 2016년 기준 산업의 규모로 보면 OECD 28개 국가 중 9위 수준에 해당한다. 시장 규모는 약 8조2,600억 원이고, 건축주 직영공사 설계 1조2,514억 원, 건축사사무소 2조3,471억 원, 건설사업관리/감리 2조3,202억 원으로 추산된다.

최근 건축사업계에 따르면 건축설계를 포함하는 건축서비스산업의 규모와 역량이 확대되고 있음에도, 건축사의 고유 업무 특성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는 제도 등으로 건축사들의 업무여건은 악화되고 있다. 높은 부가가치와 고용창출 효과가 있는 지식기반산업인 건축서비스산업의 육성을 위한 건축사의 노동과 산업, 정책에 이르는 ‘통합 관리 마스터 플랜’ 수립이 요구된다는 지적이다.

건축사의 자격요건은 강화되고, 업무대상 범위는 확대되고 있다. 건축사의 업무와 자격을 규정한 건축사법을 보면 제정당시인 1960년대는 건축사의 역할이 ‘건축물의 질적 향상을 도모’하는 수준에 머물렀다. 하지만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건축물의 질적 향상 도모에서 건축물과 공간 환경, 그리고 건축문화발전’으로 업무대상 범위는 확대됐고, 건축사 자격요건은 국제수준에 맞게 강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건축사 자격시험 응시자격은 국제건축사연맹과 협정(UIA Accord)등 국제적 기준에 맞게 개편됐다. 건축교육의 최소연한을 5년 이상 전일제 교육과 최소 2년 이상(향후 3년 권장)의 실무수련기간 조건 등을 수용한 것이다. 국제적 기준을 충족했지만, 특성화고·마이스터고 등 직업계고와 2~4년제 건축학과를 졸업한 실무경력자들은 진로의 기회가 제한되거나 막히게 됐다. 8년이라는 유예기간이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기존 정책과 새로운 정책과의 미스매치가 있었고, 이런 괴리에서 오는 피해자 구제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부분이 됐다. 교육 당국은 장기적으로 진로의 기회가 보장되지 않는 직업계고와 전문대학의 건축학과 폐과를 염두에 둬야 하고, 건축사 관련 주무부처는 직업선택의 자유를 억압한다는 불공정성에 대한 민원에 대응하면서, 건축 산업계에 밀어닥칠 설계 분야 인력난 현실화를 걱정해야 하는 형편이다.

실제 건축전공자들의 업계 유입이 눈에 띄게 줄고 있다. 한국건축학교육인증원의 연례보고서 통계를 보면 2019년 2월 5년제 건축 관련 전공학과를 보유한 대학에서 배출한 졸업생은 모두 1,904명이다. 이들 중 건축사사무소로 취업한 이는 800여 명에 그쳤다. ▲건설회사는 63명 ▲인테리어 10명 ▲공무원은 30명 ▲대학원 73명 ▲기타가 571명으로 약 30%를 차지한다. 지난 2010년 건축학과 졸업생 중 건축사사무소 취업률이 50.29%에 달했던 것에 비하면 큰 폭의 감소세를 보이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 마스터 플랜 부재로 정책 간
   미스매치와 건축사 비전 실종

서울특별시 공공건축사 A 건축사는 건축사 업무 등 노동과 산업, 그리고 정책 등을 종합적으로 연구하고 통합 관리할 수 있는 마스터 플랜의 부재가 정책 간 미스매치를 만들고 있고, 건축사의 업무여건 악화와 전문성 훼손, 또 업계 유입을 막는 원인이 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A 건축사는 “마스터 플랜 없이 단기적 처방이나 성과에 급급한 정책이나 과제에 집중하다보니 건축사의 미래를 책임질 비전 제시는 실종됐고, 정책이나 연구마저 현장의 모습을 끼워 맞추려는 구태에 머물고 있는 것이다”면서 “그 사이 비전을 잃은 건축사들은 업권을 침해받고, 전문성이 보장되지 않는 작금의 환경에서 각개전투를 벌이고 있을 뿐”이라고 평가했다.

건축사 업계 주요 현안 중 하나인 설계의도 구현 적정대가 산정을 예로 들면 이해가 쉽다. 2018년 개정된 건축법에 따라 허가권자가 감리자를 지정하는 건축물의 경우 건축주는 설계자의 설계의도가 구현을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해당업무를 수행하는 설계자인 건축사는 명확한 대가기준이 없어 대가를 지급받지 못하고 있고, 공공발주처나 건축주들 역시 별도의 대가 지급에 인색하다. 건축사를 위한 제도는 있지만 설 자리는 없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동네지킴이로 활동하고 있는 마을건축가인 B 건축사도 마스터 플랜 부재를 아쉬워했다. 그는 공정거래위원회가 제기한 건설사 설계업 허용을 화두로 올렸다. “건축사와 건축서비스산업의 과거와 현재를 고려한 장기적인 마스터 플랜이 없다보니 이미 돌고 돌았던 건설사 설계업 이슈가 재탕·삼탕되는 것이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공공성과 안전성을 담보해야 할 건축물 설계에 건설사를 무리하게 진입시키려다보니 건축사법 입법취지를 부정해야 하고, 국민안전이라는 사회적 가치를 저울질하겠다는 초법적인 망상을 하게 되는 것”이라면서, “건축사의 전문성을 기본으로 한 기본설계 즉, 마스터 플랜이 존재한다면 이처럼 국민을 볼모로 건축사의 전문성을 훼손시키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단정했다.

◆ 대한건축사협회, 건축사 정책·산업
   컨트롤타워 역할 수행할
   ‘건축처’ 등 기관 설립 제안

대한건축사협회(이하 협회) 관계자도 “건축사의 업무여건 악화와 전문성 강화를 위해 협회에서 별도의 기구를 운영하고 있지만, 협회 내 조직이다 보니 활동에 근본적인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면서 “장기적인 안목을 가진 건축설계 전문가, 정부 및 국회 관계자 등으로 이뤄진 컨트롤타워가 확립되어야 하고, 또 현재의 제도를 분석하고 연구해 대안을 제시할 마스터 플랜 수립이 이뤄져야 주요 난제들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협회는 이미 조직 내 건축정책을 개발하고, 건축품질향상을 위한 건축설계, 감리 시스템을 연구하고 있는 건축연구원과 건축사자격등록갱신관리 업무를 맡고 있는 건축사등록원, 건축사 전문성 강화를 위한 건축사실무교육을 시행하고 있는 건축사교육원 등을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관계자의 지적대로 협회조직이라는 한계는 명확하다. 협회 내 건축연구원을 국가 연구기관으로 재편해 국비지원을 통한 연구 활동을 강화한다면 기존 건축정책, 노동, 산업 등의 연구성과를 이어가면서, 향후 제도개선에 어떤 기관보다 발 빠르게 대응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해 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협회는 ‘건축처’ 등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담당할 주요 기관설립을 제안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 건축물의 공공자산관리 및 정책·제도는 각 부처가 관리하고 있어 효율적인 국가 자산관리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각 부처에 산재되어 있는 건축물관리시스템을 하나로 집약하고, 건축산업으로서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공공자산을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건축처’와 국가산업발전과 일자리 등 고부가가치를 창출하기 위해 ‘건축진흥원’ 설립이 마땅한 해결책으로 제시되고 있다.

관련해 이미 정부도 건축서비스산업 구조개선 중장기 로드맵과 컨트롤타워로서의 건축진흥원 설립 등을 추진하고 있다. 건축서비스산업의 시장구조를 정상화하고 독립적인 지식기반 서비스산업으로 성장하도록 기반 마련에 나선 것이다.
앞서 건축서비스산업 규모가 OECD에서 9위를 차지했다고 했지만, 실제 산업 규모에 비해 사업체별 매출액은 19위, 종사자당 매출액은 20위로 상대적으로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 대부분의 업체가 소규모이면서 낮은 수익구조를 가지고 있고, 일부 대규모 업체가 전체 산업 매출액의 상당 비중을 차지하는 기형적인 산업구조 양상도 보이고 있다.

시장에 나와 있는 사업체는 많지만 이들의 소득은 그렇지 않다는 사실, 그리고 기형적인 산업구조에 대한 체질개선을 통한 건축서비스산업의 진흥이 필요하다는 점을 환기해야 한다.
건축도시공간연구소가 진행한 국민 인식조사결과 성인 10명 중 7명 이상이 자신의 삶속에서 건축을 중요하다고 인식하고 있고, 건축의 품질개선을 위해 노력해야 하는 주체로 국민 3명 중 1명은 ‘건축사 등 건축설계관련전문가’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건축전문가인 건축사에 대한 국민의 기대를 이어나가기 위해서라도 장기적인 비전을 가진 마스터 플랜과 이를 구체화할 합리적인 컨트롤타워를 확보하는 일이 시급한 과제임을 인식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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