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대표적인 실존철학자 사르트르(J.P. Sartre)는 사람과 사람사이의 관계를 '수열집단'(數列集團)과 '융합집단'(融合集團) 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한 바 있다. 전자는 정류장 같은 공공장소에 서 있는 사람들로 어쩌다보니 한곳에 모였을 뿐 아무런 내적 유대가 없는 우연적 집단을 가르키는 것이고, 후자는 그 구성원들이 내면적으로 얽히고 이어져 하나의 의식적 공동체를 이루는 경우를 가르키는 용어이다. 어느 사회나 이러한 두 가지 성격의 집단이 존재하겠지만, 분명한 것은 자본주의 사회가 발전해갈수록 융합집단의 성격을 가졌던 사람들이 수열집단으로 급속하게 변모해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몸담고 있는 대한건축사협회도 이러한 맥락에서 예외가 될 수 없을 것이다. 우리들은 자신이 오랫동안 몸담았던 업역 속에서 자기를 알아보는 이들을 만나기 어렵다. 그들은 우연히 한 구성원들과 살고 있을 뿐, 아무런 생활양식을 공유하는 것들이 없어지고 있다. 건축사법이 규정하고 있는 보호 속에서 자격을 취득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이 법의 치리권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회원들이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예전처럼 공동체적 결속감을 가지고 있던 조직이 아니라 그저 생태적 생활양식에 따라 상호단절과 개체화의 양상이 뚜렷해진 이웃주민일 뿐이다. 또한, 서로 깊이 알고 지내지 않아도 심적 부담은 물론 아무런 행동의 불편을 느끼지 못한다.

가끔 현상설계경기의 과정을 들여다보면, 제도권에서 이탈한 건축사의 졸작이 보란 듯이 끝내는 당선작으로 치고 오른다. 직원도 없고, 사무실 한 칸 없어도 업무를 수주하여 남의 손으로 몇 장 그린 것 가지고 높은 수준의 작품과 저가를 무기로 경쟁하려 든다. 언제부턴가 전문가로서의 자존감을 찾아볼 수 없다. 그들은 우연히 한 단체에서 자격증을 얻었을 뿐이다. 융합집단의 기술을 공유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서로의 업무에 깊이 개입할 수도 없다. 모두가 무심하고 독립적인 타자(他者)일 뿐, '나-너'의 소통이 차단되고 '나-그것'의 관계로만 얽혀있는 존재들이다.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는 지난 3월 26일 대통령에게 건설업체의 설계겸업 허용 요구 추진 결과를 보고하였다. 건축사법은 전문성, 업역 보호 등을 이유로 건축사가 대표이사인 건축사사무소에서만 영업이 가능하여 건설업체들은 시공과정에서 새로운 기술과 공법을 설계에 반영하지 못하며 설계와 시공을 연계한 통합 기술의 개발 제약으로 인해 폐해가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건축사사무소의 명칭사용의무규제를 폐지하고 대표 자격규제를 완화하여 일정 수의 건축사를 채용, 공동 법인을 설립 운영하는 경우 대형건축물과 턴키공사(공공공사)에 한해서 설계업을 허용하겠다는 것이다.

창작성과 예술성의 작가적 철학은 그 건축물의 생명이다. 위기를 기회로 반전하자! 지혜를 모으면 저들보다 월등한 전략을 수립할 수 있다. 모든 건축사는 한 가족이며 더 이상 경쟁의 대상이 아니다. 일정규모로 융합집단의 공동체를 만들자. 지금 부터라도 대열에서 이탈하지 말고 규모를 갖추어 경쟁력을 확보하자. 대형건축물도, 턴키발주공사도, 결국 건축사들만이 수준 있는 디자인을 할 수 있다. 이러한 기술들이 체화되어진 우리들 아닌가? 재력가들이 흉내 낼 수없는 달란트를 우리는 이미 자산으로 보유하고 있다.

지금도 우리 건축사들은 아름다움을 조형 창작하는 미술가요, 예술가들이며, 아무런 내적 유대가 없는 우연적 수열집단이 아니라 내면적으로 얽히고 이어진 의식적 공동체의 목표를 이루어가는 융합집단으로서 가치 있는 존재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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