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수탈시설물을 문화재로 등록할 수 없도록 하는 내용의 문화재보호법 개정 법률안이 국회에 발의되어 문화재 보호단체와 학계의 우려와 함께 일제강점기 건축물의 평가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다. 민주당 장세환 의원이 제출한 [문화재보호법 일부 개정법률안]의 주요 골자는 다음과 같다.

“일제 식민통치, 침략전쟁, 민족문화 말살 및 경제적 수탈의 수단으로 이용된 동산 또는 부동산은 문화재로 지정 또는 등록될 수 없고. 기존 등록된 것도 말소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다만 역사적·교육적으로 보존 및 활용가치가 있다고 인정될 경우 역사적 보존 자료로 지정한다”는 것이다.

이 법안은 얼핏 보기에는 우리 문화재에 대한 가치를 보호하고 민족문화의 자긍심을 지킨다는 명분이 있어 보이지만 근대문화유산을 말살하는 결과를 초래할 위험성이 크다. 이 개정 법률안이 통과되면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관청건물, 산업시설, 군사시설, 금융시설, 일식주택 등의 대다수가 제외(해제)되어 그나마 얼마 남지 않은 근대유산의 보존에 심각한 타격을 줄 것이며, 근대문화재에 적용되는 법적 장치들과 충돌하는 등 등록문화재법의 근간을 흔들게 될 것이다.

지난 30 여년 간 한국사회의 고도경제성장으로 우리의 도시환경은 급변하였고, 개발과 재개발의 역동적인 힘에 의해 근대사의 물리적인 흔적들은 거의 지워졌다. 특히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근대건축물은 식민통치의 부정적인 시각으로 주저 없이 파괴되고 멸실되었으며, 그나마 남아있는 몇몇 건물들도 지역균형개발이라는 명분의 뉴타운, 신도시, 재개발, 재건축으로 사라질 위기에 처해있다.

▲ 철거된 조선총독부(1926). 1995년 8월 15일 철거됐다.

서울은 600년 역사의 문화도시임을 자처하지만 현재의 모습은 신도시로 탈바꿈해나가는 거대한 콘크리트구조물의 전시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강남에서는 불과 30년의 흔적도 찾기 쉽지 않다. 역사를 잃어가고 있는 우리의 건축도시환경에서 젊은이들의 역사의식 수준이 낮은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건축은 시대의 거울이다. 여러 시대에 걸쳐 변화해온 다양한 양식의 건물들을 보존하면 도시에 다양함과 생기를 줄 수 있고, 잃어버린 장소성을 회복할 수 있으며, 자랑스러운 것이든 부끄러운 것이든 중요한 역사의 흔적은 쉽게 잊어버리는 대중에게 산 교육의 장이 된다.

다행히 2001년에 도입된 등록문화재 제도로 일제강점기와 50·60년대의 건축도 문화유산으로 인식되기 시작하였으며, ‘문화재’ 하면 재산권 침해를 떠올리는 일반인들의 의식도 점차 나아져 스스로 문화재 등록을 신청하는 민간건축의 사례도 늘어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발의된 본 문화재보호법 일부 개정법률안은 시대에 역행하는 발상이라 아니할 수 없다. 한국건축역사학회에서는 아래와 같은 이유로 문화재보호법 개정에 분명한 반대의사를 밝힌바 있으며, 관련 학계 및 단체와 연계하여 저지운동을 펴나가고자 한다.

▲ 한국은행 본관(1912). 한국 금융계를 식민지화 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지어진 은행 건물로 현재 한국은행 화폐금융박물관으로 활용되고 있다.

첫째, 현행 문화재보호법에는 지정주체와 문화재의 성격에 따라 국가지정문화재(국보, 보물, 중요무형문화재, 사적, 명승, 천연기념물, 중요민속자료)와 시도지정문화재, 문화재 자료 및 등록문화재 등 다양하게 분류되어있는 만큼, ‘역사적 보존자료’라는 별도의 유형을 또 만들 필요가 없으며,

둘째, 문화재의 가치평가와 제한 기준(대통령령)을 마련하는 일은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한 건 한 건 검토할 사안이고, 또 개별 사건과 문물에 대한 역사적 평가라는 것 자체가 고정적이지 않고 시대에 따라 변하는 것이니 만큼, 성급하게 추진하는 일은 자칫 빈대를 잡으려다 초가 삼칸을 모두 태울 우려가 있다는 것이며.

셋째, 우리가 보존해야 하는 대상으로서의 문화유산이라면 최대한 광범위하게 모두를 끌어안으려는 자세를 보여야 할 것이며, 이런 이유로 배척하고 저런 이유로 제척한다면 결국은 매우 폐쇄적이고 단선적인 역사 하나만을 남겨놓게 될 것이다.

▲ 부산근대역사관(1929). 부산, 경남지역의 식민지 토지 및 경제침탈의 대표기관이었던 동양척식주식회사 건물은 한때 미공보원으로 사용되다가 현재 부산근대역사관으로 활용되고 있다.

이 개정 법안은 기존의 우리나라 문화재 보존체계를 훼손할 뿐만 아니라 유네스코 등 전세계 문명국의 문화재 보존 개념에 반하는 법률안이다. 따라서 국회는 학계나 전문가의 의견이 전혀 반영되어 있지 않은 본 개정 법률안의 입법절차를 중단하고, 문화재청은 일본어가 사용된 문화재명칭의 조속한 변경과 일제강점기 침탈과 관련된 사실을 명확하게 표기하는 등 현행 문화재보호법의 테두리 내에서 합리적인 보완 방안을 마련하기를 촉구한다.

오늘날 문화선진국들은 치욕적인 유산, 인류의 과오를 보여 주는 유산, 소위 네거티브 유산을 적극적으로 보존함으로써 쉽게 잊어버리는 대중에게 산 교육의 장이 되게 하고 있다. 예를 들면 일본의 히로시마 원폭돔이 세계유산으로 보존되고 있고 독일 유태인 수용소도 보존되고 있다. 국내도 서대문형무소가 역사전시관으로, 부산의 토지 및 경제침탈의 대표기관인 동양척식주식회사가 부산근대역사관으로 활용되고 있고, 인천의 구 인천일본 18은행지점은 인천개항장 근대건축전시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우리도 아픈 역사를 무조건 지우려고만 하지 말고, 오히려 그것을 잘 보존해서 후세에 교훈으로 삼게 해야 한다. 일제강점기는 극복의 대상이지 망각의 대상이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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