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년 역사 속에 미래를 담다…근대 목조건물 리모델링한 인천광역시건축사회관의 가치

올해 12월 11일 첫 단독회관 개관, 1932년생 근대 목조건물의 변신…“소박하지만 깊고 따뜻하다” 이유리 기자l승인2019.12.16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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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재 흔적 등 건물이 겪어온 세월 살려
희미해져가는 항구도시 살릴 재생도시의 모범사례로 기대

▲ 석정훈 대한건축사협회 회장, 류재경 인천광역시건축사회 회장을 비롯한 시도건축사회장, 각계 인사들이 인천광역시건축사회관 개관을 맞이해 테이프 커팅식을 하고 있다.

도시마다 축적된 역사가 다르고 실감하는 시간 또한 다르게 흘러간다. 도시의 모습 또한 달라야 맞다. 하지만 유행을 핑계로 제도를 핑계로 어느새 도시들의 풍경은 엇비슷해졌다. 이런 상황에서 역사에 묻혀있던 뿌리를 현대생활 속으로 끄집어낸 건축물이 있다.

인천 중구 항동 제물량로에서 87년 간 자리를 지킨 고건물이 일 년여의 공사 끝에 올해 12월 인천광역시건축사회관으로 새 간판을 걸었다.
르네상스 디자인과 일본 건축양식이 혼재된 근대식 목재건물은 1930년대를 재현한 세트장으로 착각할 만큼 고즈넉한 인상을 준다. 인천항 태동기 당시만 해도 이곳 부근은 다양한 상인들에 의해 형성된 근대 건축물의 군락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자 과거의 영광이 무색할 정도로 그 흔적은 빛이 바랬다.
이 때문이었을까. 개관식에 참석한 사람들은 우리가 잊고 살아온 세월을 끌어안은 이 노건물에 감격의 박수를 보냈다.

회관은 2층 규모에 연면적 330.63제곱미터로 넓은 편은 아니다. 리모델링을 할 때 요즘 입맛에 맞춰 변화를 줄 수도 있었지만 인천광역시건축사회는 ‘역사’를 택했다. 건축사인 박재형 에이앤씨 건축사사무소 대표는 “낡은 건물을 현대생활에 맞게 보수하는 일은 간단하지 않다”면서 “회관 근처에 남아있는 개항기 시절 건축양식들과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건물의 원형을 최대한 유지하면서 단점을 보완하는 데 주력했다”고 말했다. 건축물 외벽에 어설프게 붙어 있던 철재 구조물을 뜯어내고 목재를 사용해 일본 전통건축의 분위기를 살렸다. 내부는 철골구조로 보강했고, 화재에 대비하도록 회벽으로 마감했다. 목재가 썩거나 노후화된 부분은 다른 재료로 대체하거나 기존 재료 안에 새로운 재료를 설치하는 식으로 보완했다. 벽체는 인조석 외벽마감재로, 지붕은 기존 기와 위에 단열페인트를 칠했다. 반면 과거 화재가 있었던 천장의 흔적은 감추지 않고 부재를 덧대 검은 페인트로 마감한 뒤 그대로 노출시켰다. 1층과 2층을 연결하는 수직통로인 계단도 그대로 두었다. 기존에 있던 공간을 활용해 설비공사도 최소화했다. 과거 식당이었을 때 구성되었던 홀, 주방, 화장실을 사무실, 행정부서장실, 다용도실 등으로 고쳐 쓴 것이다.

▲ 인천광역시 중구 항동의 인천광역시건축사회관은 1932년에 건립된 고건물(사진 좌)을 리모델링한 2층 건물이다. 르네상스 디자인과 일본 건축양식이 혼재된 외형을 잘 살려 근대로 돌아간 듯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처럼 87년을 겪어온 고건물을 현대에 맞게 복구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무엇보다도 고건물의 역사를 파악하는 일에 난관을 겪었다. 최근까지 ‘우정일식’이라는 식당으로 사용됐다는 것 외에 이곳에 대해 알려진 정보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손장원 인천재능대학교 교수가 흔적 찾기에 나서면서 초창기 완공 모습까지 그 유래가 드러났다. 몇 년 전까지 식당이었던 이곳은 과거에 창고사무실을 거쳐 질소 카바이트 판매점, 선박용품 상점 등으로 사용됐었다. 그리고 이제는 인천광역시건축사회관으로 새 옷을 갈아입었다.

사실 이번 개관은 인천광역시건축사회 입장에서도 감회가 남다르다. 인천광역시건축사회는 1982년 경기도건축사회에서 독립한 이후 여섯 곳의 사무실을 옮겨 다닌 끝에 올해 처음으로 단독회관의 꿈을 이뤘다. 2004년 ‘인천광역시건축사회관 건립위원회’를 만든 것을 시작으로 회관을 준공하기까지 여러 우여곡절이 있었다. 구조적인 안정성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땅을 사서 건물을 지었다면 진행 과정이 보다 순탄했을 것이다. 그러나 인천광역시건축사회는 근대 건축물의 역사적 가치와 스토리를 보고 이 고건물을 매입했다. 다행히 인천광역시건축사회의 취지에 공감한 여러 업체들이 뜻을 모아준 덕분에 이곳은 일 년 만에 부흥했던 인천항 시절을 연상케 하는 공간으로 재탄생할 수 있었다.

그동안 차이나타운, 개항장거리, 신포국제시장 등으로 중구 원도심이 주말마다 관광객들로 북적이는 것과 비교하면, 이곳 부근은 바닷길 옆으로 난 시내 외곽이다 보니 인적이 드물었다. 정부 관계자들은 이번 회관의 개관으로 인천중동우체국, 인천문화재단 등이 위치한 주변도시가 문화거점으로 활용될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입을 모은다. 향후 1부두가 개방되면 고건축물의 가치는 더 상승할 것으로 예상된다. 류재경 인천광역시건축사회장은 개관식에서 “인천광역시건축사회관이 희미해져가는 주변 항구도시의 풍경을 활성화시킬 수 있는 도시재생의 훌륭한 모범이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회관 1층은 사무국과 북카페로, 2층은 회의실과 전시장(아키풋)으로 이용된다. 인천광역시건축사회는 그중 2층을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열린 문화공간으로 활성화할 계획이다. 현재 전시실에는 개관 특별전이 전시(12월 31일까지)되고 있다. 다른 공간에서는 ‘근대 인천’의 모습을 대형사진으로 볼 수 있다. 불에 그을린 목재들과 새 철재들로 형태를 갖춘 지붕 아래에서 작품을 감상하다보면 현재의 시간이 스멀스멀 썰물처럼 밀려나간다.
“직선은 인간이 만든 선이고 곡선은 신이 만든 선이다”라는 가우디의 말이 있다. 우뚝우뚝 높게 올라간 도시의 건축물이 아니라 깊이 새겨진 역사 속에서 그 도시만의 가치를 건져 올린 소박한 건축물이 곡선과 닮아 보이는 이유는 왜일까. 2020년을 앞둔 지금, 곡선의 의미를 되짚어볼 때다.

한편, 12월 11일에 열린 개관식에는 석정훈 대한건축사협회 회장과 왕한성 경기도건축사회 회장 등 각 건축사회 임원들을 비롯해 박남춘 인천광역시 시장, 윤관석 국회의원, 이정미 국회의원, 도성훈 인천광역시교육청 교육감, 허종식 인천광역시 균형발저정무부시장, 김종인 인천광역시 의회 건설교통위원회 위원장 등의 정치계 인사들과 최병국 인천문화재단 대표, 정명환 사회복지공동모금회 회장, 권혁철 경인방송 대표, 김영환 인천일보 대표 등 각계 인사들이 참여해 인천광역시건축사회관의 개관을 축하했다. 

이유리 기자  leeyr87@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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