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
- 신동옥

유곽은 문어다.
문어는 가까스로 홍등을 내건
거리로, 게토의 하늘로 날아간다.

거리 밖에는 거리가
도시 끝에는 도시의 알리바이가
도사리듯 모두 여기 와서
몸 섞는다.

여기서 나고 자란 친구는 말한다.
마치 도깨비가 빛을 토하는 것 같군.
진흙탕에 고인 물은
차라리 얼어붙기를 바라겠지.

구어체로 꾹꾹 눌러 써도
금세 잇새를 빠져나가는 억지 생소리들
한때는 한때의 알리바이가 있었고
희망이 있었지.

이제는 다만 물의 몫도
얼음의 몫도 아닌
희망도 피로도
가구거리 지나 다리 건너
수산시장 지나 구정물에 섞여 구 여수항
밤바다로 흐르고

친구와 나는
이 거리에 맞춤한 말씨로 길을 잡는다.
 

- 「밤이 계속될 거야」신동옥 시집 / 민음사 / 2019년

여수(麗水)는 여수(旅愁)일지도 모른다. “마치 도깨비가 빛을 토하는 것 같군.”은 “도깨비가 빛을 토하는군.”으로 바꿔 읽어야 할지도 모른다. “여기서 나고 자란 친구”는 직유법이나 비유 같은 건 쓰지 않는다. 그러니까 여기서 나고 자란 친구는 여기서 나고 자라지 않은 친구다. 희망은 과거로 적힌다. “억지 생소리들”인데도 여기서 나고 자란 친구와 여기서 나지 않고 자라지 않은 친구는 자꾸 발을 맞추려고 한다. 그 길이 “한때의 알리바이”로, 혐의로 느껴지는 건 아마 그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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