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발성을 수용하는 리더십

김남국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장l승인2019.11.04 13:26

크게

작게

메일

인쇄

신고

직원들과 함께 새로운 건축 디자인 아이디어를 내는 회의를 하고 있다고 가정하자. 평소 업무 성과가 그리 높지 않은 직원이 오늘도 말썽이다. 고민을 거의 하지 않았음이 명백하면서, 동시에 현실성이라고는 전혀 없는 바보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
상당수 리더들은 “그게 말이 되느냐?”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낼 확률이 높다. 말도 안 되는 아이디어라는 낙인을 명확하게 찍어 주면 해당 직원이 향후 좋은 아이디어를 내기 위해 더 노력하리라 예상할 수 있다. 이는 부하 직원을 위해서도, 조직을 위해서도 바람직한 일로 보인다. 좋은 조직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혹은 부하 직원에게 싫은 소리를 하기 싫어서 대충 넘어가는 건 리더의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세상사는 생각보다 복잡하다. 단순하게 가정한 인과관계대로 일이 풀리지 않는 경우가 많다. 다른 관점에서 고민이 필요하다. 바로 창발성(emer-gence)이란 시각이다. 창발은 ‘돌발적으로 떠오른다’는 뜻이다. 세상 만물의 구성 요소를 잘게 쪼개서 이해하면 전체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이게 환원주의적 사고다. 하지만 개별 구성 요소만으로는 설명이 불가능한 전혀 새로운 현상이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예가 개미 집단이다. 한 마리의 개미를 아무리 분석해 봐도 거대한 협업을 할 만한 지적 능력을 갖추고 있지 않다. 그러나 수 만, 수 십 만 마리가 모이면 놀라운 협업을 이뤄낸다.
좋은 아이디어가 많이 모여야 놀라운 창의성이 나올 것 같지만, 현실은 꼭 그렇지 않다. 바보 같은 생각, 평범한 생각, 독특한 생각, 희한한 생각 등이 모이며 계속 상호작용을 하다가 어느 순간 탁월한 아이디어가 갑자기 튀어 나온다.
실제 한 전자회사의 세탁기 신제품은 브레인스토밍 과정에서 어처구니없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세탁기에서 세탁물을 집어넣거나 꺼낼 때 고객들이 허리를 굽혀야 하니 공중에 매달아보자는 생각이었다. 이 아이디어의 문제점을 짚어 보자면 한도 끝도 없다. 공중에 매달았다가 세탁기가 흔들리면? 떨어지면? 물은 어떻게 공급하지? 배수는 어떻게 하지? 사람이 들이받으면?….
회의에 참석한 선임자가 이런 말도 안 되는 아이디어는 처음 들어본다며 화를 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 이런 일은 없었다. 그리고 다른 참가자들이 여기에 살을 붙이거나 첨삭을 한 끝에 공중에 매달자는 바보 같은 아이디어는 벽에 붙여보자는 그럴듯한 아이디어로 진화했다. 벽에 붙이는 것도 진동 흡수 등 만만치 않은 과제가 있었지만 기술진척으로 방진 패드를 붙이는 방법 등을 활용해 해결할 수 있었다. 마침내, 벽에 걸 수 있어 빨래를 넣거나 꺼낼 때 고객들은 허리를 숙일 필요가 없는 제품이 나왔다. 특히 1, 2인 가구에서 소량 세탁을 원하는 고객들이 열광했다.
지금 당장 말도 안 되는 아이디어를 비난하면 창발 가능성 자체를 봉쇄하는 것과 같다. 바보같은 아이디어가 비난받는 분위기에서 사람들은 그럴듯한 아이디어에만 집중할 것이다. 하지만 이는 점진적 혁신(incremental inno-vation)에 그칠 확률이 높다. 고객 가치의 획기적 개선은 어려워진다. 지금처럼 변화가 심한 세상에서는 창발성을 수용하는 리더십이 필요하다.

김남국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장  march@donga.com

&<저작권자 © 대한건축사협회 건축사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인기기사

여백
신문사소개광고안내광고문의기사제보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대한건축사협회  |  서울특별시 서초구 효령로 317 건축사회관 9층 편집국  |  대표전화 : 02)3415-6862~6865  |  팩스 : 02)3415-6899
등록번호 : 서울 다 09707  |  등록연월일 : 2009년 5월 8일  |  발행인 : 석정훈  |  편집인 겸 청소년보호책임자 : 홍성용
Copyright © 2019 대한건축사협회 건축사신문.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