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백산 기슭 부석사의 한낮, 스님도 마을사람도 인기척이 끊어진 마당에는 오색 낙엽이 그림처럼 깔려 초겨울 안개비에 촉촉이 젖고 있다. 무량수전, 안양문, 조사당, 응향각들이 마치 그리움에 지친 듯 해쓱한 얼굴로 나를 반기고, 호젓하고도 스산스러운 희한한 아름다움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 나는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사무치는 고마움으로 이 아름다움의 뜻을 몇 번이고 자문자답 했다. // 기둥 높이와 굵기, 사뿐히 고개를 든 지붕추녀의 곡선과 그 기둥이 주는 조화, 간결하면서도 역학적이며 기능에 충실한 주심포의 아름다움, 이것은 꼭 갖출 것만을 갖춘 필요미이며 문창살 하나 문지방 하나에도 나타나 있는 비례의 상쾌함이 이를 데가 없다.” 최순우 선생의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의 첫머리이다. ▲기둥의 역할은 동 서양이 다를 바 없으나 석재를 사용한 서양과 목재인 동양은 필연적으로 다른 양식을 갖게 되었다. 서양의 기둥은 주초(base), 주신(shaft), 주두(capital)로 구성되며 주두의 양식에 따라 간결한 도리스식부터 화려한 코린트식까지 3오더 또는 5오더로 발전하였다. 그러나 동양의 목재기둥은 주춧돌이 별도일 수밖에 상태에서 서양의 주신부분만을 기둥으로 일컫는다. 또한 주두가 없는 대신 익공, 주심포, 다포 등으로 주두와 같은 멋을 내게 되었다. ▲목재의 원기둥은 궁궐과 관아, 사찰에서도 권위를 갖춰야하는 건물에만 쓰였는바, 개심사 대웅전에 사용된 지름이 같은 원통형, 화엄사 각황전과 서울 남대문의 위를 좁게 하여 안정감을 준 민흘림 그리고 서양의 엔타시스와 같이 기둥길이 1/3에서 1자 높은 곳을 최대지름으로 하여 착시현상을 바로잡게 한 무량수전과 수덕사 대웅전의 배흘림으로 나눈다. 각기둥은 네모기둥이 대부분으로 민흘림양식을 사용한 곳이 있으며, 육모기둥은 향원정처럼 육모평면에서 그리고 팔모는 추녀를 받치는 활주에서 그 예를 찾아볼 수 있다. 이렇듯 원기둥과 각기둥의 용처를 구분한 것은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라는 천원지방(天圓地方)에서 기인한다. ▲그리스는 카리아티데스라고 하는 여인상이나, 아틀란트라는 남성상으로 기둥을 삼기도 하였다. 우리네는 구례 화엄사 구층암 요사채의 500년 된 모과나무나 마곡사 대광보전의 자연 그대로의 기둥 그리고 일부러 휘어진 것만 사용한 영주 가학루처럼 희귀한 생김새의 특수한 나무로 기둥을 삼기도 했다. ▲한국기둥의 특성은 건물을 수평으로 보이게 하기 위해 네 귀의 기둥을 높힌 귀솟음과 건물의 수명을 제고하기 위해 변두리기둥을 조금 안쪽으로 기울인 안쏠림 기법이다. 바야흐로 총선일이 다가온다. 선조들의 기둥에 대한 지혜를 잘 아는 건축인들은 나라의 기둥을 누구보다 잘 선택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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