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여(血餘)

함성호 시인l승인2019.10.02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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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여(血餘)

- 김두안


머리카락이 자란다. 싹둑 잘라 버린 머리카락이, 고요할수록 근질근질한 머리카락이, 온통 불길한 생각들이, 머리통을 쥐어뜯던 머리카락이, 악을 쓰며 부정했던 기억이, 두통처럼 날카로운 머리카락이, 심장이 토해 낸 싸늘한 머리카락이, 눈동자에 뿌리박힌 머리카락이, 피가 거꾸로 솟던 말들이, 풀고 볶고 갈라도 해답이 없던 머리카락이, 거울 속에 회오리치는 머리카락이, 분노에 타 버린 흰 머리카락이, 죽어서도 자라겠다고, 머리 끈에 한 다발 묶여 있다

- 『물론의 세계』김두안 시집 / 문학수첩 / 2019년
가장 공포스러운 머리카락을 꼽을라치면, 아마도 메두사의 머리카락이 생각날 것 같다. 머리카락은 모두 뱀이고, 멧돼지의 엄니와 황금의 날개를 가졌으며, 그 추악한 얼굴을 본 사람은 돌이 되었다고 한다. 머리카락이 모두 뱀인 것과 메두사의 얼굴을 본 사람은 모두 돌이 되어버렸다는 이야기는 여러 상상을 일으킨다. 뱀은 지혜의 상징이기도 하다. 지혜는 기억을 바탕으로 한다. 인간은 자기에게 유리한 쪽으로 기억을 편집하는 버릇이 있다. 그러나 잊고 싶었던 기억이 나를 억누를 때 그때, 우리는 돌이 되는 건 아닐까? 다시 한 번 그 옛날의 장소를 뒤돌아 보다 돌이 된 사람들을 떠올려 보라.

함성호 시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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