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에 입들

함성호 시인l승인2019.08.01 14:06

크게

작게

메일

인쇄

신고

저녁에 입들
- 정끝별


한 이불에 네 다리를 꽂지만 않았어도

서로 휘감기지도 엉키지도
그리 연한 속살이 쓸리지도 않았을 텐데

한솥밥에 내남없는 숟가락을
꽂지만 않았어도

서로에 물들지도 병들지도
그리 쉽게 행복에 항복하지도 않았을 텐데

한 핏줄에 제 빨대를 꽂지만 않았어도

목줄도 없이 묶인 채 서로에게 버려지지도
무덤에서조차 그리 무리 지어 눕지도
않았을 텐데

한 우리에 우리라는 희망을 꽂지만 않았어도

두부에 박힌 미꾸라지처럼 서로를 파고들지도
닫힌 지붕 아래
그리 푹푹 삶아지지도 않았을 텐데


- 『봄이고 첨이고 덤입니다』정끝별 시집 / 문학동네 / 2019년
<법구경>에는 이렇게 전하고 있다. “사랑하는 것들과 만나지 말라, 사랑하지 않는 것들과도 만나지 말라. 사랑하는 것들을 보지 못함도 괴로움이요, 사랑하지 않는 것들을 봄도 괴로움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사랑을 하고 미워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못 만나서 괴로워 하고 미워하는 사람을 만나서 또 괴로워 한다. 그러면서 우리는 후회한다. ~(하지)만 않았어도 ~(했)을 텐데, 하고. 그러나 이 시는 그 후회가 마치 당당한 인간 선언처럼 들린다. 그게 우리야. 너고 나야.
 

함성호 시인  .

&<저작권자 © 대한건축사협회 건축사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인기기사

여백
신문사소개광고안내광고문의기사제보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대한건축사협회  |  서울특별시 서초구 효령로 317 건축사회관 9층 편집국  |  대표전화 : 02)3415-6862~6865  |  팩스 : 02)3415-6899
등록번호 : 서울 다 09707  |  등록연월일 : 2009년 5월 8일  |  발행인 : 석정훈  |  편집인 겸 청소년보호책임자 : 홍성용
Copyright © 2019 대한건축사협회 건축사신문.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