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년 만에 맡아보는 굴뚝 냄새에, 나는 불현듯 콩깎지와 메밀대를 군불아궁이에 때어 볼 수 있었던 날이 그리웠다.” 요즈음 젊은이들이야 굴뚝하면 산타 할아버지의 빨간 벽돌굴뚝을 상상하거나 높다란 공장굴뚝을 떠 올리겠지만 산업화 전에 어린 날을 보낸 사람들은 상기한 ‘이문구의 관촌수필’처럼 고즈넉한 향수와 추억이 배어있다. 또한 예전에는 아침 굴뚝에 연기가 오르지 않는 집은 양식이 떨어져 굶고 있다는 징표이기에, 그럴만한 집의 굴뚝을 유심히 살피던 어른들도 계셨다. ▲서시(序詩)로 유명한 윤동주의 굴뚝은 일제시대 어려운 시골의 삶을 낭만적으로 읊었다. “산골짜기 오막살이 낮은 굴뚝엔 / 몽기 몽기 웬 연기 대낮에 솟나 / 감자를 굽는 게지 총각 애들이 / 깜박 깜박 검은 눈이 모여 앉아서 / 입술에 꺼멓게 숯을 바르고 / 옛이야기 한 커리에 감자 하나씩 / 산골짜기 오막살이 낮은 굴뚝엔 / 살랑 살랑 솟아나네 감자 굽는 내.” ▲한민족 고유의 온돌이 출현한 것이 선사시대부터이니 굴뚝의 역사 또한 유구할 터다. 오늘 날 우리가 아름답고 다양한 형태의 굴뚝문화를 갖고 있는 것은 온돌의 종주국으로서 오히려 당연한 것이다. 경복궁 자경전의 굴뚝은 치밀한 위치와 형태의 선정으로 꽃담을 신하처럼 거느린 왕 같은 자태가 늠름하고, 교태전의 6각 굴뚝은 아미산 화계(花階) 속에 화려한 자태로 서 있음에 꽃들은 그를 연모하기에 더욱 예쁘게 핀다. 왕의 침소인 강녕전 굴뚝은 여인들의 거처와 달리 그림 대신 벽돌을 사용하여 만수무강 글자를 만들었고, 색깔도 붉은 벽돌이 아닌 검은 전을 사용하여 위엄을 더하였다. ▲민간은 궁궐처럼 화려하진 못하나 다양성은 대단하다. 불갑사와 개심사의 굴뚝엔 문이 있고, 남포향교의 굴뚝은 등대모양이며 백양사는 2층집 모양을 하고 있다. 신륵사는 표주박형이요, 하동의 최참판댁은 어린이의 순박한 얼굴이 나란히 있다. 불갑사의 굴뚝은 보살형상으로 그윽한 미소를 띤 얼굴을 기와장으로 만들었는데, 입과 눈에선 연기가 나온다. 부처님 세계는 굶지 않고 웃을 일 밖에 없는 피안이라는 걸 일깨우기 위한 것일까? 무지랭이 백성들이 한문을 알리 없으니, 서양에서 그들을 위해 교회에 성화를 그려 놓았듯이 아마도 심지 깊은 스님이 굴뚝에서도 미륵을 볼 수 있게 만들었을 것이다. ▲요즈음은 시골에서도 보일러 사용으로 굴뚝 연기를 볼 수 없고, 대도시는 열병합발전소의 멋없는 굴뚝이 있을 뿐이다. 기왕이면 선조들의 지혜를 본 받아 사람들에게 희망과 즐거움을 주는 멋진 굴뚝은 안 될까? 그나저나 중소도시의 아파트 단지 내 소규모 열병합발전소 대부분이 비용과다로 가동을 못하여 주민들은 새우잠을 잔다니 유난히 긴 겨울에 안타깝기만 하다. 그 굴뚝에 연기는 언제나 힘차게 솟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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