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우 · 이명진 _건축사 대담 인터뷰

(주)정림건축 종합건축사사무소(정림)가 창립 52년을 기해 대학로를 떠나 태평로로 본사 이전을 한다. 1967년 서울 을지로 허름한 단층건물에서 故 김정철 건축사, 김정식 건축사에 의해 설립된 정림은 종로구 연건동 시대를 지나 다시 4대문 중심으로 터전을 옮긴다.
정림은 창업자의 건축정신을 계승해 ‘사람을 위한 건강한 건축’을 지향한다. 이 때문에 기업의 성장에 더해 다양한 사회책임활동 프로그램을 장기적으로 운영해오고 있다. ‘사회책임 활동과 비즈니스 성장이 따로 생각할 수 없는 통합적 가치’라는 ‘지속가능경영’과도 맞닿아 있다.
이번 대담인터뷰는 특정 기업을 상징하기보다 대기업 후원 없이 성장한 건축사사무소 모델로서 이를 주목해보자는 취지에서 이뤄졌다. 업계의 성장을 위한 다양한 부수적 활동은 보통의 건축사사무소가 쉽게 하지 못하는 것을 책임감 있게 하는 것으로서 더 의미가 있다. 임진우 정림 대표와 이명진 건축사로부터 정림이 대학로를 떠나 새롭게 태평로에 터를 잡게 된 본사 이전의 배경과 추구하는 기업가치와 성장전략 등을 들어봤다.

장영호 기자 올해로 정림이 창립 52주년입니다. 1967년 서울 을지로 작은 아틀리에에서 성장한 건축사사무소로 끝없는 시장의 변화 가운데 살아남았습니다. 이번 정림 본사 이전 기획의 의의와 배경, 그리고 건축계 내에서 건축사사무소를 개업하고 성장시키는 건축사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줄 수 있을까요?

임진우 대표 기업이 창립 50주년을 맞기란 정말 어렵고, 더구나 부침이 심한 설계사무소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정림이 50년 넘게 구성원 간 성취감과 유대감을 높이며 계속 성장세를 걸어온 비결에는 결국 ‘사람’이 공통분모인 듯합니다.
정림은 창립 초기 을지로를 거쳐 대학로에 터를 잡은 지가 40년입니다. 새롭게 태평로로 본사 이전을 확정짓고 크게 네 가지를 고려했어요. 첫째는, 공간입니다. 협력·융합이 화두인 시기라서 설계부서 최소 4∼5개가 한 층에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죠. 이전하는 본사(시청 앞 최근 신축된 ‘호텔그레이스리 서울’)는 층별 공간이 넓어 직원들이 더 긴밀하게 협력·공유·융합할 수 있게 해줍니다. 둘째, 시간입니다. 지난 50년을 대학로에서 보냈으니 다가올 100년 기업으로의 준비는 새로운 터전에서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시작해보자는 의미를 갖습니다. 셋째, 사람 즉 기업이 인간중심의 공간을 조성해 행복한 일터를 어떻게 추구하느냐는 매우 중요합니다. 그래서 이전 사옥 인테리어 과정에서 친환경 자재 사용 등 신경을 썼고, 따로 헬스매니저를 둬서 직원건강도 도모하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는 장소입니다. 경쟁사들은 외지로 나가는 추세지만, 정림은 오히려 4대문 중심으로 들어갑니다. 시청 앞으로 장소를 옮기면 교통망이 한결 좋아지고, 시행현장이 전국구인 만큼 접근성 면에서 직원들에게 이점이 상당히 클 겁니다.
이명진 건축사가 새롭게 이전하는 본사 공간 디자인을 진행했는데, 새 본사의 공간 활용과 업무 시스템의 변화를 어떻게 접목시킬지 고민을 많이 했잖아요.

이명진 건축사 정림건축이 연건동 시대를 접고 시작하는 태평로 시대는 단순히 일터를 옮긴다는 것 외에도 새로운 변화라는 상징적 의미를 갖지 않습니까. 건축이 사람의 행동과 삶의 패턴을 생성하듯이 결국 일하는 공간은 일하는 스타일을 만들기 때문에 공간활용 디자인에선 무엇보다 팀워크에 초점을 뒀습니다. 정림건축의 설립초기 내재된 DNA가 ‘조직설계’이기 때문에 공유와 소통 및 협업의 공간개념을 염두해 디자인했죠. 그래서 한 개 본부 내 나눠져 있던 정림건축의 기존 공간을 대신해서 다수의 조직과 본부를 수평적으로 배치하고, 각 조직의 전문성·독립성을 확대하면서도, 동시에 공유를 통해 협업 밸런스를 어떻게 맞출까에 역점을 뒀습니다.
협업을 하려면 자기 책상에서만 일할 수는 없죠. 가령 스케치하거나 모형을 만들 때는 특화된 공간에 가서 일을 하고, 좀 더 높은 사양의 디지털 Work을 할 때는 그 데스크에 가서 일을 한다거나 팀 또는 본부 간 협업·소통·회의를 할 때는 그 라운지에서 하게 됩니다. 건축계, 사회와 교감을 해야 할 때는 정림홀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직급과 소속 관계없이 구성원들이 회사의 모든 곳에서 본인들의 열정을 자유롭게 쏟을 수 있는 공간을 목표로 했습니다.
대표님은 1986년 정림건축에 입사해 2015년 대표가 되기까지 30년 넘게 한 기업에 몸 담으셨는데, 본사 이전을 맞는 감회가 남다르실 것 같습니다. 눈에 보이진 않지만, 지켜봐 오신 정림만의 플랫폼·문화가 있을 겁니다. 앞으로 지켜야 하는 창립멤버가 만들었던 정림건축의 가치, 기업철학이 있을 텐데요.

임진우 정림은 알다시피 김정철, 김정식 건축사 두 분 형제에 의해 설립됐습니다. 故 김정철 건축사(정림 명예회장)는 정림건축문화재단을 설립해 정림의 수익 일부를 공익사업에 사용토록 하는 사회기여 틀을 만들었고, 정림은 이런 가치를 지켜오고 있습니다. ▲정림학생건축상 ▲건축학교 ▲해비타트 설계봉사 ▲건축포럼 ▲전시와 같은 건축계 소통과 건축대중화를 위한 노력은 故 김정철 명예회장님의 철학에 바탕을 둡니다. “훌륭한 건축은 시대·사회가 요구하는 인간의 생활을 조화 있게 창조하는 건강한 것이어야 한다”입니다.
창업자이신 두 분은 건축사관학교 개념의 ‘정림건축 플랫폼’을 만드셨어요. 젊은 건축사들이 정림에서 마음껏 실력발휘를 할 수 있도록 해서 나중에 창업 또는 건축계 여러 분야에서 역량을 펼칠 수 있게 하자는 취지입니다. 정림을 통해 배출된 기라성 같은 건축사, 교수분들이 건축계에 참 많아요. 정림이 앞으로도 젊은이들이 재밌고 활발하게 건축을 할 수 있는 터전이 됐으면 하고, 이런 기조는 앞으로도 지속돼야 한다고 봅니다.
건축행위 자체가 인간 존중을 바탕으로 하는 만큼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것뿐 아니라 정림이 하는 건축활동도 재미, 그리고 그 만큼의 의미가 있어야 합니다. 물론 50년 넘게 쌓아온 시스템, 조직과 룰은 지켜져야 하겠죠. 그 위에서는 누구든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대형사이니까 굉장히 고루하고 딱딱하게만 볼 수 있겠지만, 나부터 내가 대표니까라는 권위의식에서 벗어나려고 해요.(웃음)
밖으로 눈을 돌려 향후 정림을 이끌어 갈 영 아키텍트로서 정림과 같은 대형사가 지속가능성, 시장대응력을 갖추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하다고 보는지?

이명진 어디까지나 개인의견입니다.(웃음) 첫째, 이런 질문들을 스스로 고민해보는 구성원들이 많아지도록 하는 문화·시스템이 더 탄탄해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기업이 가진 차별화된 원천을 보존하면서도 변화하는 시장니즈를 파악해 신속하게 대응하여 기술·마케팅·비전의 차별화로 롱런의 경쟁력을 지속 확보해나가야겠죠. 제가 신입사원으로 입사할 당시 정림은 대형사여서인지 구성원이 그 위에서 더 멀리 더 높게 가능성을 열어주는 그라운드 같은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안정된 시스템 내 순치되면서 야성을 잃어버리는 것도 사실입니다. 비교적 안정적이고 탄탄한 환경 안에만 있게 되면 관성에 젖을 수밖에 없어요. 정림의 미래주역이 될 젊은 건축사들이 100년 기업의 리더십과 경쟁력을 갖게 될 때 ‘성공의 함정’에 빠지지 않을 겁니다.
요즘 건축계를 보면 건축시장 정상화를 위해 제대로 된 설계대가와 업무영역 확대에 대한 논의가 활발합니다. 건축을 바라보는 다양성과 작은 이야기를 수렴하며 변화를 향한 노력들을 지켜볼 수 있습니다. 건축사협회에서는 건축사 윤리강화를 위한 건축사협회 의무가입, 적정 업무대가기준 개선도 추진 중이라 들었습니다. 대형사도 해야 할 역할이 분명히 있을 텐데요.

임진우 정림은 건축문화집단으로서 행복한 일터를 구현하고, 닮고 싶은 회사를 만드는 것입니다. 건강한 건축과 공간환경을 추구하죠. 이 점은 건축계 구성원으로서 정림의 역할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는 것이에요. 정림 같은 대형사들도 건축계 공동 발전, 건강한 건축생태계를 위해 모두가 하나라는 생각, 같은 러닝메이트로서 필드에서 거들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과거 성장시대 세대들에게 경제력·지위 등이 성공을 가늠하는 지표였다면, 지금 젊은 세대는 차별화된 삶·자신만의 취향을 성공의 기준으로 생각합니다. 눈여겨볼 점은 현 세대들이 새로 쓰는 성공의 법칙에서 ‘공존·공정·배려’라는 단어가 빠지지 않습니다. 자신의 성공을 공동체의 성장으로 연결시키는 긍정적 에너지가 많다는 것입니다. 이런 가치를 기업문화와 우리 건축계에도 융화시켜 인프라를 구축해야 하지 않을까요. 단순히 업계 1위, 매출이 얼마다를 목표로 하진 않아요. 그건 길게 보지 않는 천박한 자본주의일 뿐이죠.(웃음)
건축사협회도 건축사의 권익과 위상제고를 위해 노력하지만, 정림도 더불어 사는 세상과 건축계 발전이라는 큰 뜻을 위해 같이 간다는 의식을 변함없이 가져가려고 합니다. 건축사사무소가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이다보니 한계가 있겠지만, 늘 그래왔던 것처럼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노력·고민들을 지속할 겁니다.

▲ 1967년 설립된 정림건축이 종로구 연건동 시대를 지나 다시 4대문 중심인 태평로로 터전을 옮긴다. 임진우 건축사(정림건축 대표)와 이명진 건축사(정림건축 설계본부, 본사이전 TF팀장)는 대담을 통해 본사 이전 배경과 대형사로서의 책임과 고민, 그리고 기업의 지속가능성 및 역할에 대해 이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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