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퀸틴롯지(Quintin Lodge)에서 샌드프라이포인트(Sandfly Point)까지
창가로 들어온 붉은 여명에 잠을 깼다.
비가 갠 맑은 날이다. 개운하게 마른 배낭과 등산화, 옷 등을 매만져보고 식당으로 향한다. 밀포드 트레킹 마지막 날의 여정이다.
오늘은 20마일에서 33.5마일까지 13.5마일을 걷는다. 전반적으로 내리막 평지성 코스이다. 어제 힘들었던 것에 비하면 가벼운 트레킹이다. 3일간의 통신두절로 외지와 연락이 되지 않던 것이, 이제 저녁이면 연락이 되겠다는 희망으로 여정을 시작한다.
오전 7시 30분에 출발한 우리 선두팀은 중간 보트쉐드(Boatshed)에서 휴식을 취한다. 하도 빠른 걸음으로 와서 30여 분을 쉬어도 가이드가 보이지 않는다. 보트쉐드는 개척시대에 트레킹 코스개척을 위하여 배를 타고 왔던 곳이다. 이곳에는 멕케이 폭포가 유명하다. 크기는 작지만 웅장하다.
탐험가 멕케이와 서덜랜드가 이곳을 먼저 보았다. 멕케이가 먼저 이 폭포의 웅장함을 보고 이름을 따서 폭포 명을 짓는다 하였고, 퀸즈롯지에 있는 웅장한 서덜랜드 폭포는 운 좋게도 서덜랜드의 이름이 붙여진 것이다.
가벼운 발걸음은 고생대의 고사리(silver fern)들이 사람 키를 넘게 자라고 있는 원시림이다. 강을 끼고 흘러 인도양으로 넘어가는 물줄기를 따라 트레킹한다.

점심은 자이언트게이트에서 한다. 식사할 수 있는 오두막이 있지만 샌드플라이가 하도 많아서 다리 밑 폭포가 보이는 곳에서 식사를 한다. 폭포의 물줄기와 바람에 샌드플라이는 없다. 계곡물에 발을 담그면서 점심을 한다.
여정은 다시 시작된다. 마지막 날, 트레킹 거리가 제일 길지만 평탄한 코스이다. 아다 호수를 따라 걷기도 한다. 유일하게 길을 낼 곳이 없어 화약을 이용하여 절벽을 깨고 길을 냈던 곳이 있는 구간이다. 일렉트릭 포인트는 몇십 년 전까지만 해도 전화가 들어와서 시내 쪽과 통신을 연결하던 곳이기도 하다.

마지막 33.5마일 이정표가 있는 밀포드 트랙에 도착하면 샌드플라이 포인트란 별칭이 있다. 하도 샌드플라이가 많아서다.
방문센터에 도착하면 순서대로 이름을 적는다. 순서에 따라 방 배정을 받고, 키를 받아 따스한 핫초코 한 잔을 받아든다. 그동안의 여정을 서로 위로하고 축하하면서 일정을 마무리한다. 밖으로 나와 아다호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우리의 종착지 33.5마일 이정표에서도 사진을 찍는다.
오는 순서대로 15명씩 보트를 타면 배는 출발한다. 약 30여 분을 타고 가면, 휴양 마을인 미트랙에 도착한다. 미트랙은 인도양과 밀포드 트랙을 외부에서 구경하기 위해 많이 찾는 관광지이다. 이곳 숙소인 미트랙 롯지는 Ultimate Hikes 사가 트랙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기간에만 영업을 한다. 50명만을 위한 장소다.
저녁은 만찬과 축제이다. 힘든 여정을 서로 이야기하고, 맥주와 와인을 나누고, 당구 게임도 하면서 저녁을 마무리한다.
해가 지면 뉴질랜드의 하늘을 볼 수 있다. 십자성뿐만 아니라 은하수까지 보이는 어둠, 반딧불이를 아주 가까이에서 접하면서 밀포드 트레킹의 추억이 뇌리에 반짝이게 해본다.

다음날, 인도양까지 유람선을 타고 관광을 한다. 웅장한 폭포와 돌고래, 물범 등을 볼 수 있는 기회도 좋고… 트레킹의 추억을 생각하면서, 바다에서 바라보는 밀포드 사운드 트랙을 볼 수 있는 또 다른 매력을 안고 웅장한 자연경관을 차창으로 바라보면서 퀸즈랜드로 향한다.

밀포드 트레킹은 단순히 트레킹이 아니다. 자연 속에서 자연을 보호하며 함께 순응하면서 하는 산책이다. 날지 못하는 새와 동행하고, 운동화 끈이 벌레인 줄 알고 달려드는 위카새도 함께 트레킹하는 코스이다. 세계 각지에서 온 50명의 트레커들과 호흡하고 대화하고 삶을 이야기하는 밀포트 트레킹은 추억보다는 배움이 많았던 트레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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