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종호 건축사

건축사의 사(士)는 선비 사자로 선비는 우주의 질서를 대신하거나 왕(요즈음엔 국가)의 일을 대리하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건축사는 참된 우주(자연)의 질서를 깨닫고 인간 세계에 어떻게 적용해서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가를 끊임없이 연구하고 실천해야 하는 소중하고 막중한  직업인이다. 따라서 높은 뜻, 이상(사상) 없이는 사회에서 주류 세력이 될 수 없다. 우리는 건축을 통해 사회를 올바르게 바로 잡아야 한다. 풍수 건축·디자인 혁명이 그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예전에 우리 조상들은 집을 짓거나 건물을 지을 때 아무데나 짓지 않고 아무렇게나 짓지 않았다. 고전에 나오는 흥부조차도 집터를 신중하게 고르고 정성들여 집을 지었다. 부석사나 소수서원의 가람배치를 보면 철저히 선비정신에 입각해서 건축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도산서원의 경우도 수행하거나 공부하기 좋은 곳이며 건축물이다.

그런데 오늘 날 건축이 필요악이니 환경파괴의 주범이니 하는 소리를 들어야 하는 것은 자연의 순환원리를 거역하는 데서 비롯된다고 볼 수 있다. 또한 큰 것을 보지 못하고 작은 것에 연연하기 때문이다. 영화 ‘관상’에서 관상가 내경(송강호 분)이 “파도만 보지 말고 바람을 보아라”고 한 말을 음미할 필요가 있다. 만물에서 순환하지 않는 것은 없다. 풍수는 하늘, 땅, 사람을 다루는 학문으로 핵심은 바로 순환의 원리다. 그러므로 앞을 내다보고 지속 가능한 건축을 위해서는 풍수 개념의 건축을 해야 한다.

자연에 순응하는 자는 흥하고 자연에 역행하는 자는 망한다고 했다. 그러나 순응하면서 이용할 줄도 알아야 한다. 자연은 예술의 원천이자 어머니다. 21세기 건축의 지향점은 인류의 삶의 질 향상이 목적이 돼야 한다. 과거의 관념적이고 배타적인 건축에서 벗어나 시각적인 것 보다 시간에 순응하는 건축을 지향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산지가 대부분인데 산을 절개해서 터무니없는 도시개발을 하고 어처구니없는 건축과 삶을 이어왔다. 중국이나 유럽은 평지라 랜드마크가 필요하지만 우리는 배산임수, 즉 자연이 랜드마크다. 그런데도 외국 건축사들이 자기 예술적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이 땅의 무늬에 맞지도 않는 건축을 설계하도록 하고 있다. 땅도 제각각 무늬를 다 갖고 있거늘 땅의 지문이 사라져간다.

우리 건축사들이 풍수지리 공부를 해야 하는 이유는 첫째로 땅과의 관계 맺기를 잘하기 위해서다. 입지 선정에서부터 배치방법까지 사람을 살리고 건축을 돋보이게 하는 방법을 터득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큰 틀과 높은 차원에서 볼 수 있는 안목을 키우는 것도 중요하다. 사람이 그렇듯이 모든 땅에는 쓰임새가 따로 있다. 명당터 라고 해도 사찰의 경우는 기가 너무 강해 거주지로선 부적합하다. 삼각형 땅에 집을 짓고 망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20세기 세계 최고의 건축으로 손꼽히는 프랭크로이드 라이트의 ‘낙수장’이 사람이 살지 않는 폐가로 변한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한다.

그리고 두 번째로 건물과 사람의 관계 맺기를 잘하기 위해서다. 좋은 건축이 좋은 사람을 만든다. 사람과 마찬가지로 건물 모습도 제각각 이지만 좋은 건축은 모난 데가 없어야 하고 격이 맞아야 한다. 그런데 현재 새로 지은 우리나라 대부분의 정부 청사 건물이 그렇지 못하고 각지고 모나고 찌그러지고 구멍 나고 뒤틀리고 한 것들이 문제다. 모두 현상설계에 의해서 태어난 작품(?)들이다. 뭐든지 튀어야 주목받는 세상이지만 사람도 그렇고, 건축도 모양이 반듯하고 주변과 조화를 이룰 때 아름다운 법이다.

오늘날 4차 산업의 핵심인 창조도 전통과 역사적 가치에 근간을 두고 있다. 풍수가 한국 전통문화의 중심에서 한류로 이어져 세계화를 이룰 수 있게 되길 염원하면서, 풍수를 바탕으로 한 우리의 건축이 세계건축문화를 선도할 수 있기를 새해를 맞으면서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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