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에서 건축을 전공하고 건축사사무소에서 수년간 수련하여 건축사시험을 치르고 힘겹게 시험을 통과한 이들에게 ‘건축사’라는 자격이 주어진다. 그런 후에도 건축사는 끊임없이 공부하고 고민하며 시대의 이슈에 맞추어 변하는 법규와 대지의 다양한 상황, 건축주와 소통하기는 물론 수익성 구조까지 판단하는 등 그야말로 지속적인 열정페이가 없으면 유지하기 힘든 직업임에 틀림없다.
이렇듯 많은 건축사들의 열정페이를 당황하게 하는 광고를 얼마 전 라디오 광고에서 들었다.

“기성화 주택을 내 마음대로 선택해서 쉽게 구매하는 OO홈”, “표준화된 합리적 가격, 전원주택 설계비 0원”

잘못들은 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그 다음날 귀 기울여 들은 방송에 정말 ‘전원주택 설계비 0원’이라는 카피가 내 귓전을 울렸다. 홈페이지에 들어가 봤지만 아무리 살펴보아도 건축사사무소가 아닌 말하자면 특정분야 시공업체였다. 그러면서도 홈페이지 한켠에 전국 어디서나 인허가가 가능한 건축사사무소를 운영하고 있어서 건축 준공까지 원스톱으로 처리가능하다는 문구가 있다.
건축사사무소가 기획설계단계부터가 아닌 단지 시공사가 정해주는 표준도면을 허가부터 준공까지 처리하는 대행업체 같은 기분이 들어 무척 씁쓸하였다. 그렇다하더라도 뻔히 사무소에 의뢰하면 당연히 드는 비용(설계비)이 0원이라는 것은 건축사라는 단체를 별로 신경 쓰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것은 건축사의 역할을 단순 허가를 위한 대행업체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게 하는 파급효과를 가져올 것이 분명하다. 건축사라는 전문가를 아직도 모르는 이가 많은 가운데 건축사의 존재와 역할을 알리는 일이 더욱 요원해지는 것을 느낀다. 이래저래 걱정스러운 광고카피이다.
생활수준이 상승하며 많은 이들이 집짓기 프로젝트나 리모델링, 인테리어 등에 상당한 관심을 가지고 있지만 정작 그 자리에 ‘건축사’의 모습을 찾기는 어렵다.
그 광고가 외치는 ‘설계비 0원’이 너무 당당하여 그런가보다 하고 필자 역시 아무생각 없이 받아들여질 지경이었으니 말이다. 얼마 전 어느 건축사분의 칼럼에서 10년 전 설계계약서를 꺼내들고 지금과 같은 금액에 정말 힘이 빠진다는 속상함을 읽었던 기억이 난다. 더욱이 최근은 너도나도 어렵다는 이야기가 인사말이 되었으며, 필자와 같은 신진건축사는 사무소를 개소한다는 자체에 많은 분들이 걱정을 먼저 해주셨다.
‘진료는 의사에게 약은 약사에게’라는 철지난 문구가 우리 건축사에게는 아직도 한 참 외쳐야하는 카피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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