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업무의 법제화는 공공건축의 질 향상에 절대 기여, 설계공모 방식도 대대적 개편해야”

공공건축 설계공모 프로세스 전반의 문제
건축사들 “곪았던 게 터졌다”
“한국 건축 구조적 문제 점검 계기 삼아야” 지적

“터질 게 터졌다.”
정부세종 신청사 설계공모 논란에 대해 건축계 내부에서는 곪았던 염증이 터진 것이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일차적으로는 사업검토·발주방식 및 디자인관리방안 등 설계 전 마땅히 해야 할 ①건축기획의 미비, ②건축전문직 공무원의 부재, ③기술검토의 형식적 운영, ④공정성 및 투명성을 담보할 심사위원 구성·운영을 문제 삼는다. 그러나 이 같은 지적은 건축계 뿌리 깊게 자리 잡은 불신 그리고 관련 시스템의 전반적 점검으로까지 향한다. 

① 공모전 기획의 중요성 인식 필요
총 사업비 3,714억 원을 투입하는 정부세종 신청사는 올 6월 ‘세종청사 지구 핵심 터를 차지했다’는 지적으로 입지선정 때부터 논란을 일으켰다. 국가 백년대계를 내다보고 신중히 지어야 하지만, 관계자에 따르면 완공시점을 정해 두고 국제설계공모도 나라장터에 급하게 공고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간의 경위를 봐도 공모는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작년 10월 개정된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 특별법’에 따라 올 4월 ‘행복도시 추가이전기관 신청사 기본구상’ 연구용역이 추진된 지 불과 2달여가 지난 6월 ‘정부세종 신청사 건립 언론 브리핑’ 후 6월 말 설계공모가 공고됐고, 10월 31일 당선작이 발표됐다. 본지가 나라장터에 공고된 설계공모 지침서를 확인한 결과 지침서 내 순수하게 설계안 마련을 위한 ‘설계지침’은 8페이지에 불과했다.

정책·제도적 보완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다행히 올 3월 조정식 국회의원이 대표발의한 ‘공공건축의 건축기획 개념의 도입과 건축기획 업무·절차 규정’을 골자로 한 ‘건축서비스산업진흥법’이 11월 29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앞으로 공공기관은 공공건축 사업을 할 때 건축물 등의 설계 전 ▲ 사업 규모·내용, 사업기간, 재원조달계획 등 사업의 추진에 관한 사항 ▲ 발주방식 ▲ 디자인관리방안 등에 관한 건축기획 업무를 의무적으로 수행해야 한다. 이 법에 따른 ‘건축기획’의 정의는 ‘건축사업을 시행함에 있어 사업의 효율성을 높이고 공공적 가치와 디자인 품격을 향상시키기 위하여 설계 전에 사업의 필요성 검토 및 입지 선정, 발주방식 및 디자인관리방안 검토, 공간구성 및 운영계획 등에 관한 사전전략 수집 등을 하는 것’으로 돼 있다.

충분한 건축기획 부재는 정부 세종신청사와 같은 국가적 프로젝트를 책임지고 소화할 건축전문직공무원 부재와도 연결된다. 현행 담당 공무원이 6개월∼1년 만에 순환 보직되는 기계적인 체계에선 전문가를 양성할 수 없다는 의견이 건축관계자들 사이에서 꾸준히 지적돼 왔다. 실제 행복청 총괄건축가와 상의해 총괄해야 할 담당국장도 프로젝트 도중 바뀐 것으로 알려졌다.

A건축사는 “건물 완성도를 위해선 전문가와 협업해 프로젝트를 지속적으로 끌고나갈 관료 조직의 지속성이 반드시 뒷받침돼야 한다”고 말했다.

② 설계공모 심사는 전문가에게 책임과 권한 부여해야…건축외 전문가는 사전 및 사후 기술심사자로 역할 부여 필요
건축도시공간연구소가 2014년 수행한 ‘건축서비스산업진흥법 시행에 따른 공공건축 설계발주제도의 변화’ 연구보고서는 공공건축 설계발주 제도의 문제점으로 ▶ 발주처 직원의 과반수 이상 심사위원 참여(현행은 30% 이하), ▶ 계획 및 설계 이외 전문가의 동일한 평가 비중 등 심사의 전문성·공정성 논란, ▶ 과도한 제출물 요구 등 설계자의 참여비용 부담 가중 등을 지적했다.

이번 논란을 두고 설계공모 심사는 건축실무를 해본 전문가로 위원회를 구성해 전적으로 책임·권한을 부여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건축기획이 부실한 상황에서 심사과정에서 발주의도를 풀고자 하는 관행도 여러 부작용을 낳고 있다.

심사위원에 사전 기술점검 차원에서 엔지니어가 포함되는 것도 문제다. 이번 정부세종 신청사 설계공모 심사에서도 엔지니어가 포함됐는데, 문제는 이러한 기술적 검토가 내용 없이 형식적이라는 점이다. 건축사들은 기술적 문제는 실시설계단계에서 충분히 보완·발전시킬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본지가 11월말 서울시공공건축가를 대상으로 국내 건축 설계공모 관련 개선사항 조사에서도 개선과제 첫 번 째로 ‘중간설계수준도 안 되는 개념설계에서 기술적 검토와 개략공사비를 요구하는 것’이 가장 많이 거론됐다.

서울시공공건축가로 활동하는 B건축사는 “의도와 목적은 이해되지만, 불가능한 자료를 만드는 걸 의무화하고 소용없는 자료로 검증한다”며 “심사위원들이 몇 시간 내에 설명서를 모두 보고 기술검토를 할 수도 없다. 공모자·심사위원 모두 불필요한 작업과 심사를 요구하게 된다”고 전했다. 개선을 위해선 “아이디어를 심사하는 것에 필요한 자료만 제출하게 해서 선정한 이후에 공사비와 기술검토는 전문위원회를 통해 당선안만을 갖고 진행단계 전반에 걸쳐 평가·조정하면서 아이디어가 현실적으로 구현되게 도와야 한다”고 덧붙였다.

당선 후도 문제다. 발주처의 끝없는 묻지마 설계변경은 당초 당선안을 전혀 다른 결과물로 만들기도 한다. 심지어 당선 후 2등이나 다른 수상작들의 장점을 수용해 안을 조정하라는 압력도 가해진다. 건축사들은 “당선작을 뽑았으면 지켜야지. 이렇게 완성할거면 설계공모 의미가 없다”고 항변한다. 발주처가 참여설계자의 설계도안을 도용했을 경우 소송하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C건축사는 “이의를 제기해 소송을 걸게 되면 다음 설계공모에서 암묵적으로 제외될 여지가 크다”고 토로했다.

③ 공공건축 공모 프로세스 전반의 신뢰 높이는 계기 삼아야
건축도시공간연구소는 그간 공공건축 발주제도, 기획업무 및 대가기준 개선 방안, 설계공모 용역계약 제도 개선 방안 등 관련 연구를 지속하며 국내 건축계의 구조적 문제를 짚고, 정책제안을 해왔다. 건축설계 발주제도 개선방안 연구(2012년), 건축설계산업의 현안과 제도개선 방향(2013년), ‘건축서비스산업 진흥법’ 시행에 따른 공공건축 설계발주제도의 변화(2014년), 건축 설계공모를 통한 용역계약제도 개선 방안(2015년), 건축기획 업무범위 및 대가기준 개선 방안(2017년)이 이에 해당한다.

정부 세종신청사 설계공모 후폭풍은 관련 시스템 전반의 점검을 요구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게 중론이다. 특히 국내 주요 설계공모는 대형건축사사무소 위주의 ‘그들만의 리그’라 이 또한 깨뜨려야 한다는 의견도 크다.

D건축사는 “젊은 건축사들은 주로 서울·경기권의 8천만 원∼2억 원 정도의 설계비를 책정한 공공건축 프로젝트에 응모하며, 보통 접수가 80팀에 달해 경쟁이 극심하다. 제대로 출품하려면 수천만원 이상 비용이 들어가 몇 번 낙선하면 폐업위기까지 몰리는 현실에서 대부분의 설계공모는 대형사무소 중심이 될 수밖에 없다”며 “수많은 공모가 진행됨에도, 아직까지 그렇고 그런 판박이 건물이 양산된다는 건 정말 문제 아닌가. 뻔한 대형사무소만 공모에 출품하는 게 현실인데 이번 정부세종 신청사 설계공모 논란은 한국 건축의 공공건축 공모 프로세스 전반을 개선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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