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레이터는
미학적인 가치를 사회적으로 교환하는 매개인이자 중개자
건축 전시는 지적인 것과 감각적인 것이 공존하는 협업의 무대
대중과 건축의 거리를 좁히는 것이 동시대 건축 전시의 역할
건축 큐레이터 양성을 위한 건축계 내부의 진지한 관심과
제도적 지원 필요


최근 대중 미디어에서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는 말 중에 ‘큐레이션’, ‘큐레이터’가 있다. 2000년 초 정도만 해도 큐레이터가 대체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지 몰랐던 한국 사회의 놀라운 변화다. 이 말은 대형마트의 ‘큐레이션 서비스’부터 ‘북 큐레이션’, ‘콘텐츠 큐레이터’ 등 다양한 수식어로 사용되고 있다. 원래 큐레이션(curation), 큐레이터(curator)의 어원은 영어의 ‘care’, 라틴어의 ‘cura’에서 왔다. 이 단어는 예술을 통해 사회의 어두움을 ‘치유’하려는 의미를 갖는다. 큐레이터는 예술가를 돌봐주는 무대 뒤편의 보이지 않는 미학적 중재자였다. 하지만 최근에는 예술을 생산하고 알리는 데 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하는 무대 위의 중심 인물로 부상하고 있다. 사회적 가치를 교환하는 매개인이자 중개자로서 큐레이터에 대한 기대는 한층 커지고 있는 시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건축 큐레이터는 아직 낯설다. 큐레이터라는 전문 직종은 건축 전공자가 진출하는 일반 직장보다 주로 미술관이나 박물관 등 예술제도 기관에 포진되어 있기 때문이다. 필자가 속해있는 국립현대미술관의 경우에도 2011년부터 건축 전문 큐레이터를 채용했으니 그 역사는 길지 않다. 미술관이 회화, 조각 같은 전통적인 미술 장르뿐만 아니라 건축과 디자인, 영화 등 시각문화예술의 저변을 확장하고자 하는 움직임 속에서 일어난 일이다. 건축 큐레이터는 다음과 같은 일을 한다. 건축 관련 작품과 자료를 수집하고, 연구하며 이를 토대로 전시를 기획한다. 전시가 만들어지면 관련 교육 프로그램도 기획하고 홍보와 대민 업무에도 참여한다. 국립현대미술관의 경우 주로 한국 현대건축 아카이브를 중심으로 한 개인전과 기획전을 선보였다. 한편으로 젊은건축가프로그램(YAP)과 같은 풀 스케일(full-scale) 설치 작업을 프로젝트 형태로 진행하기도 했다. 건축 큐레이터는 이러한 전시 사업을 수행하면서 작가를 만나고, 건축을 재현하는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과 대화하고 관련된 작품을 비평적 관점에서 연구하며 외부 연구자를 매개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만들어 지는 건축 전시는 빈약했던 한국 현대건축의 여러 증거물들을 한눈에 보여주는 무대가 된다. 하지만 아직 역사와 비평의 토대 위에서 전시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전시가 역사와 비평의 생산을 촉발하는 계기가 되는 경우가 많다. 우리가 미국의 뉴욕현대미술관(MoMA)의 <근대건축: 국제>(Modern Architecture: International Exhibition)전이나 <해체주의 건축>(Deconstructivist Architecture)전처럼 폭발력 있는 전시를 아직 해낼 수 없는 경우가 여기에 있다.
 불과 십년 전까지만 해도 한국에서 건축 전시는 큐레이터와 같은 기획자가 개입하는 것이 아니라 주로 작가들이 직접 만들어 내는 것이었다. 전시라는 형식은 지적인 것과 동시에 감각적인 것이 공존하는 협업의 무대다. 따라서 참여 작가들이 큐레이터이자 전시 디자이너의 임무를 모두 수행하게 될 때, 그것은 작업의 비평적 관점을 긴장감있게 견지하지 못한 결과물이 되기 쉽다. 한편으로 건축 전시는 건축의 부수적인 행위로 여겨졌다. 건물을 설계하고 짓는 것보다 부차적인 일로서 건축 전시는 재정적·시간적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 만드는 한시적인 이벤트로 보여 지곤 했다. 하지만 더 이상 새로운 건물이 지어질 기회가 줄어들고 있는 저성장 시대의 지금, 건축 전시는 과거와는 다른 위상과 역할을 부여받고 있다. 전시는 건축사들과 연구자들이 공동으로 참여할 수 있는 지식 생산의 장이자 지금 시대에 대중과 건축의 거리를 좁혀 주는 적절한 매체가 될 수 있다. 건물을 짓지는 않지만 건축에 대한 가치를 만들고 교환하며 그것을 전파하는 또 다른 건축 실천을 수행하는 이들을 건축 큐레이터라고 말할 수 있다. 문제는 이러한 큐레이션의 가치와 큐레이터의 직능을 우리 건축계가 얼마만큼 이해하고 지원할 것인가라는 부분이다. MIT, 콜럼비아, 하버드GSD 등 미국 동부의 유서 깊은 건축 대학에는 건축 큐레이팅 과목이나 전공이 있다. 이 분야는 실무적인 차원에 그칠 것이 아니라 하나의 이론적, 역사적 체계를 가진 전문 분야이자 연구 영역으로 자리 매김 되어야 한다. 결국에 한 분야가 시간을 갖고 적절한 위치를 갖기 위해서는 제도적인 지원이 절실하다. 건축계 내부의 진지한 관심과 전문 교육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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