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재희 홍익대학교 건축공학부 부교수

현상설계에 참여한 모든 이의 의미와 노력을 헛되이 만드는 당대 설계공모 문제를 짚어보고자 한다.

현상설계에서 정확한 공모지침의 부재나 현상설계 당선 후 ‘묻지마 변경’에 따라 계약기간과 업무량이 증가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하지만 이에 대한 보상은 전무한 것이 현실이다.

무수한 사례가 있지만 최근에 벌어진 소소한 사건을 얘기하고자 한다. 사실 너무 작은 프로젝트라 얘기하기도 민망하지만 그래도 심혈을 기울여 설계한 이에게는 자신의 분신과 같은 소중한 작품이지 않겠는가. 서울시에서 발주한 모 전망대 현상설계 후 부서간 소통부재, 건축사에게만 희생과 타협을 요구하는 공무원들의 갑질 언행, 그리고 국내 건축계의 암울한 현실에 대해 한숨짓게 된다.

일단 수의계약이 가능한 소규모 일에 대해 공공건축가를 경쟁시켜 현상설계를 진행한 것도 문제지만, 착수보고 때 사전 조율 없이 이런 황당한 안을 뽑았냐는 타 부서의 고압적 언사와 이후 수많은 자문을 거쳐 원안 의도를 살리는 조정안을 제시했는데도 심의기관도 아닌 자문위원회 의견에 따라 무조건 삭제를 요구하는 것이었다.

“서울시에서 발주한 현상설계 당선안에 대해 서울시에서 자체 삭제하는 방향으로 가는 것과 현상설계를 몇 달 진행하고 6명의 전문 심사위원들이 선정한 안을 2시간의 역사학자 위주로 구성된 자문위원회의 주관적인 의견으로 전면 삭제하는 쪽으로 가라고 하는 것은 받아들이기 힘듭니다. 자문의견 중 ○○○ 설치가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이유에 대해 문화재의 진정성을 훼손할 우려가 있다는 언급이 있는데 그 근거가 무엇인지 납득할 수 있는 설명이 필요합니다”라고 설계자는 열심히 외쳐 봤지만 돌아오는 것은 ‘통화 거부와 협의 거부’를 대놓고 하는 부서와 ‘용역중단’ 운운하는 주무관의 이메일 뿐이었다. 이러한 부당함을 겪으며 타협이냐 아니면 장렬전사냐 고민하다 결국 힘없는 을의 입장에서 추후 당할 불이익을 생각하며 고개 숙이게 되는 게 현실이다.

한 가지 더 얘기하면, 공공연히 건축인들 사이에서 인구에 회자되는 황당한 사건이 있다. 바로 현상설계 당선 후 2등이나 다른 수상작들의 장점을 수용하여 안을 조정하라는 압력이나 나중에 완공된 건물에 가보니 2등 디자인을 차용하여 지어졌더라는, 정말 말도 안되는 얘기이다. 물론 여러 가지 이슈가 있었겠지만, 디자인의 저작권에 대한 무지와 발주처의 무단횡포에서 비롯된 코미디같은 일이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개선을 위해 힘을 합치자”, “뭐 항상 있는 일이야”, “아니 나만 잘살면 됐지” 하는, 여러 건축인의 얘기를 들으면서, 현상설계에 당선한 후 같이 일한 팀과 너무 기뻐서 얼싸안던 감격의 순간이 희미하게 겹쳐지며 쓴웃음만 남는다.

지금 건축계 설계공모의 문제의 핵심은 설계공모 자체의 문제와 더불어 ▲ 당선작에 대한 존중 부재 ▲ 그로 인한 발주처의 설계변경 요구문제 ▲ 착공 후 무단 설계변경에 대한 것이다. 그동안 여러 건축인들이 SNS를 통해 통탄의 심정을 토로하고 문제 해결 방안을 제시해 온 것으로 안다. 하지만 개인이 아니라 집단의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데 다들 공감하고 있다. 저 일이 언제 나의 일이 될지 모른다는 의식이 필요하다. 교수라도 심사위원이면 갑이라고 느낄지 모르지만 현상설계 당선자로서 을이 되는 순간 똑같은 상황에 부딪치는 것이다. 지금이 바로 다 함께 힘을 합해 문제를 바로잡을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현상설계(懸賞設計)의 현상(現狀)에 관하여 고발하는 데 그치지 말고, 다같이 힘을 모아 즐겁게 현상설계를 진행하고 참여한 모든 이의 의미와 노력과 시간을 헛되이 만들지 않는 환경, 나아가 미래 차세대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환경을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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