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사꽃 통신
- 남길순

꽃 피었다 / 오너라

해마다 그 아래 자리를 펴고
나를 눕힌다, 나란히 눕는 봄
엄마 젖은 애기 젖
내 젖은 엄마 젖
서로의 젖꼭지를 바꿔 달며 복숭아는 자라고

산 나비가 죽은 나비를 지울 때까지
어디 가서 백년이나 이백 년쯤 잠들다 왔는지
여든의 엄마는 말이 없다

꽃 속에 묻혀 할캉 달캉
분홍빛 세 살
엄마 가슴 손 넣고 만지다가

나 근데 어릴 때 아버지랑 하는 거 봤어,
복숭아 한 개 툭 던지면
복사꽃 빨개지는 주름투성이 얼굴

자네 두고 이대로 자다가 여영 일어나지 못할지도 몰러,

쑥스러운 듯
한번 만져 보라는 성화에
굽 높은 신발 신고 들어갔다가
온몸이 간질간질 복숭아처럼 빨개져서
집에 와 며칠을 긁으며 생각하니

산실에 누운 엄마 다시 여물어 가고

꽃 지었다 / 가거라


-『분홍의 시작』 남길순 시집 / 파란 / 2018년
시는 가히 오관으로 느끼는 것이다. 색(色)·성(聲)·향(香)·미(味)·촉(觸)의 육체의 기관들을 통해 들어온 대상들이 이미지와 기호와 만나 충돌하는 것이 시다. 거기에는 빨강, 파랑, 초록의 색들이 어지럽고, 톡, 팍, 툭, 탁 같은 육체와 육체의 부딪힘이 있으며 맵고, 달고, 시고 하는 맛들이 있다. 그 가려움의 정체, 어릴 때 본 엄마와 아버지의 정사, 늙어가는 육체의 수줍음, 그리고 오래 기억 될 꽃이 진 자리는 얼마나 긴 여운을 남기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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