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면장애
- 김명인

꿈이 증폭되지만 날개가 없으니
침대 아래로 불시착이나 하지
발도 못 디디는 잠,
갈 데까지 가서 헤맨다는 생각에
수면 밖을 두리번거리는데
밤비가 성긴 빗자루로
흉몽의 찌꺼기들 쓸어 모은다
모음이 비었는지 ㅅㅅ거리는 빗소리
너는 빗줄기를 타고 방금 도착한 사람
물방울 화관을 썼다
잠시 환해지다 금방 어둠에 파묻힌다
암전도 아닌데
네가 왜 이리 캄캄할까?


-『이 가지에서 저 그늘로』 김명인 시집 / 문학과지성사 / 2018년
더 이상 할 말이 없게 만드는 시가 있다. 완벽해서도 아니고(시에 완벽이란 게 있을 수 있을까?), 할 얘기가 없어서도 아니다(오히려 할 얘기가 너무 많아 입을 열수도 없을 때가 있다). 시가 그리고 있는 어둠의 밀도가 치밀하게 압박해 와서 그런 것도 아니다. 잠이 오지 않는 풍경 치고 이 시는 그 풍경을 편안하게 관조하는 것처럼 보인다. 아니면 잠이 오지 않는 지금이 꿈 일 수도 있다. 비어있는 모음처럼.

저작권자 © 대한건축사협회 건축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