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트폴리오나 실적이 많지 않은 나같은 젊은 건축사에게 ‘현상설계공모’는 달콤한 유혹과 같다. 설계 계획안만으로 평가받을 수 있고, 좋은 안이라면 선정되어 지어질 수 있으니 이보다 달콤할 수 없다. 이런 순진한 마음으로 지난 3년간 총 14개의 공공건축 현상설계에 도전해왔다. 지금 생각해보면 터무니없이 무모한 도전이었다. 그 도전의 결과 중 일부는 무척이나 억울했고, 다른 일부는 정말 좋은 다른 계획안이 당선되었다. 그 와중에 다행히 2개 프로젝트가 결실을 맺어 한 개는 준공을 앞두고 있고, 또 다른 한 개는 막 공사를 시작했다.
우선 이 도전들이 터무니없이 무모했던 이유 중 첫번째는 ‘심사의 공정성을 알 수 없음’에 있다. 많은 건축사들이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일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조금이나마 공정한 심사를 할 수 있는 장치들이 생겨나고 있다. (이 진부한 논쟁에 대해선 더 언급할 필요가 없다고 본다.)
두 번째 이유는 ‘치열한 경쟁’에 있다. 최근 도전하려고 생각했던 현상설계공모는 대부분 서울경기권의 8천만원~2억원 정도의 설계비를 책정한 공공건축물 프로젝트인데, 접수 숫자가 기본 80팀은 되는 것을 보면 엄청난 경쟁을 조성하고 있다는 것이다. (심사만 공정하다면) 이렇게 극심한 경쟁을 뚫고 선정되는 당선작은 그 설계의 질이 높을 수밖에 없다. 도전하는 설계사무소 입장에서는 인력소모로 인해 사무실 운영이 점점 힘들어질 일이겠지만, 공공건축과 대중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엄청나게 좋은 소식이 아닌가. 예전에는 입찰방식으로 발주되던 건물들이 현상설계공모를 통해 더 좋은 건축이 되고 있으니 말이다.
2016년 11월 처음으로 당선된 프로젝트는 4개월의 설계기간을 거쳐 2017년 4월에 착공됐다. ‘작품 한번 만들어보자’는 패기 하나로 487제곱미터의 작은 건물에 건축도면만 150여장을 작성할 정도로 심혈을 기울였다. 그러나 이 기대감이 크나큰 좌절감으로 변하는 데는 몇 달 걸리지 않았다.   
각 공정마다 1∼2달씩 멈춰서고, 죽은 현장이 되었다. 기존에 6개월로 예정되었던 이 공사는 18개월이 지난 현재도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동안 현장소장은 4번이나 교체되고, 최근 3달간은 현장소장이 없는 상태다. 현장소장으로 있었던 분들은 모두 급여를 제대로 받질 못했으니, 열심히 할 이유가 없고 인수인계는 기대할 수 조차 없다. 작품 만들고자 했던 설계/감리자인 나와 발주처만 두발 동동 구르는 상태가 지속되었다.
대표와 직원 한명으로 구성된 이 시공사는 입찰을 통해 수주가 되면, 급하게 현장소장을 구해 앉혀놓는데, 관리 소홀로 하도업체와 분쟁이 끊이질 않고, 발주부서와 제대로 된 정산을 못하면서 계속 적자가 쌓여왔다. 이 시공사가 맡은 모든 현장은 6개월~1년씩 지연되고, 물이 새고, 엉망이 되었다는 것을 최근에야 알게 되었다.
선배 건축사에게서 바로 1년전 비슷한 상황을 겪었다는 얘길 들었다. 이런 일이 반복적으로 일어난다면 시스템의 문제가 있다는 것이 아닐까? 현상설계공모라는 과정을 통해 엄청난 경쟁을 뚫고, 질 좋은 설계를 해봤자 무슨 의미가 있나. 입찰시스템을 통한 설계자 선정이 결코 좋은 설계를 하지 못한다는 것은 이미 모두가 공감하고 있을 것이다. 이제는 입찰시스템을 통한 시공자 선정에 대해 고민해보고 변화해야할 때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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