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평범했던 하루.
그것이 가져다주는
편안함과 고마움.
내일은 내게
어떤 하루일지 궁금하다.


유난히 추운 날씨가 길었던 올 겨울. 그 겨울의 한가운데 지난 1월 주말 어느 날, 이렇게 추운 휴일엔 이불속에서 뒹굴뒹굴하다가 좀 늦게 일어나 아침 겸 점심으로 ‘아점’을 하는 것도 어쩌면 일상의 여유인데 서울에서 종중 정기총회가 있어서 일찍 일어났다.
총회장에 도착하여 등록을 하면 회의비로 십 만원을 준다. 서울에 거주하는 사람들 중 많은 사람들이 회비만 받고 그냥 집으로 가는데 이것을 형에게 물어보니 회의 장소가 협소하여 그렇게 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한다. 나는 종친회가 돈을 허투루 쓰는 것 같아 다소 실망스러웠다. 큰형은 소종회, 대종회 합쳐서 12년을 회장을 한 다음 고문으로 있다. 셋째형은 작년에 대종회 감사가 된 후 내게 이것저것을 물었다. 나는 감사로서의 자세와 감사보고서를 포함한 총회자료의 부실함을 말했었는데 오늘 총회자료를 보니 많이 개선되었다. 셋째형은 꼼꼼하고 성실하다. 총회 중에 어떤 종원은 볼멘소리로 집행부가 종중의 일을 제대로 알려주지 않는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어디를 가나 집행부에 대한 불만은 있는가 보다.
총회를 마친 후 버스터미널로 가는 지하철은 다소 여유가 있었다. 자리에 앉아 가는 중 맞은편에 자리가 나서 앞에 서있는 젊은 사람에게 뒤를 가리키며 자리에 앉으라고 권하니 괜찮다는 제스처를 한다. 다소 멋쩍었지만 나도 그런 일이 있었다. 어느 날 시내버스를 타고 가는데 나보다 연배가 더 높은 어떤 남자가 서 있길래 내가 자리를 양보하니 굉장히 미안해하면서 내 자리에 앉았다. 조금 가다가 그 남자가 저쪽에 자리가 있으니 앉으라고 권한다. 나는 그냥 서서 간다고 사양을 했지만 그 남자가 자꾸 앉으라고 권하는 바람에 적이 난감한 적이 있었다. 이처럼 때로는 지나친 관심이나 배려가 오히려 상대방을 거북하게 하기도 하는가 보다.
청주에 도착하여 터미널 근처에 있는 대형 서점에 갔다. 나는 책은 꼭 서점에 가서 구입한다. 서점에서 잉크냄새를 맞으며 이 책 저 책 뒤적이다 뜻밖의 책을 만나는 재미도 쏠쏠하거니와 무엇보다도 서점이 점점 사라져가는 것이 못내 아쉬워서이다. 내가 70년대 이곳에서 고등학교 다닐 때 있었던 ‘ㅇ’서점이 얼마 전 폐업을 했다. 모든 사라져가는 것들은 진한 아쉬움을 남긴다. 서점이 그렇다. 책 세 권을 골라 계산을 하는데 앞서 책 두 권을 구입한 젊은 여자에게 계산대 직원이 탁상달력을 증정한다. 나도 주겠거니 하고 책값을 계산했으나 나에게는 주지 않았다. 직원에게 나는 왜 안 주느냐고 물어볼까 하다가 그만 두었다. 나이가 들면 때로는 이렇게 소극적이 된다.
책을 사들고 즐거운 마음으로 집에 오는 길, 아파트 1층 엘리베이터에서 평소에 인사하고 지내는 6층에 사시는 팔순의 할머니를 만났다. 내가 모자를 눌러써서 누구인지 모르는지 “몇 층에 가슈?”하고 물으신다. “12층에 갑니다” 하니까 한참을 보시더니 “늙으면 사람도 몰라봐유” 하시며 겸연쩍어 한다. 나는 “늙으면 눈이 침침하고 귀도 잘 안 들리고 하는 것이 오히려 자연스러운 것입니다”라고 내 딴에는 위로의 말이라고 건넸는데 그것이 과연 위로의 말이었는지 모르겠다.
그냥 평범했던 하루. 그것이 가져다주는 편안함과 고마움. 내일은 내게 어떤 하루일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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