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고 의뢰를 받고나서 30대 중반 젊은 건축사로서의 고민에 대해 생각을 해보게 됐다. 고민이라면 짧은 경력, 아직은 부족한 경제력, 쉽지 않은 일의 수주 등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 일을 시작할 때 맞닥뜨리게 되는 설계비에 대한 고민을 이야기 해보고자 한다.
설계비는 대지 매입, 건축설계, 시공, 준공의 과정에서 지출되는 총비용에서 비교적 적은 비율을 차지한다. 하지만 사람들의 인식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설계 일을 맡기 전 건축주들에게 설계비를 이야기 하면 난감했던 적이 많았다. 거의 대부분의 건축주들이 설계비에 대해 놀라거나 거부감을 가지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건축주들의 부정적인 반응을 계속 접하다 보니 시작부터 고민을 가지게 된다. 설계의 중요성을 어떻게 설득시키며, 내가 필요하다고 산정한 설계비를 저들이 부담 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선은 어디까지 일까. 변호사가 수임료를 받고, 의사가 진료비를 받듯 건축을 진행하는데 필요한 설계비를 받는 것 또한 자연스러운 일이어야 하는데 왜 약간은 서로에게 불편한 일이 되어야 하는가.
무엇보다도 많이 경험할 수 없는, 앞서 말한 평준화 되어 있는 비용들과는 다른 특수성 때문임을 부인할 수는 없다. 쉽게 타인과 비교 가능하고, 쉽게 경험 가능했던 타 비용들과는 달리 개개인이 요구하는 일의 특성에 따라 달라지는 비용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설계는 건축이란 과정의 시작이자 전체의 대부분을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젊은 건축사라고 하여 무리를 해서 능력을 발휘할 수 없는 작은 설계비로 계약을 하고 일을 하게 되면 완성도 있는 설계를 시간 내에 짜내기 힘들어지게 된다. 만족스런 설계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오히려 전체 공정에서의 문제점이 발생할 위험이 생기게 되고 거기에 따른 비용부담도 올라갈 가능성이 높다. 건축주는 필요치 않은 비용의 발생이라고 생각하기 쉽고, 건축사의 역할을 과소 평가할 가능성이 높아지게 된다. 악순환이 시작되는 것이다. 반대로 시작부터 충분한 합의를 거쳐 설계비에 대한 충분한 투자를 받게 된다면 완성도 있는 설계로 전체 과정에서의 손실도 줄일 수 있는 선순환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지게 된다. 이렇게 건축사 본인이 충분히 능력을 발휘 할 수 있고 건축주가 만족할만한 설계비를 책정하는 일은 굉장히 중요하면서도 어려운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여기서 나는 고민한다. 나는 아직 젊고, 시작하는 사람이며, 좀 더 잘하고 싶은 사람이다.
그러나 건축주들이 필요한 건 이미 노련하고, 많은 경험이 있고, 많이 잘해 온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 나는 젊은 건축가로서 그들에게 얼마의 설계비를 책정할 수 있으며, 어떻게 나를 비롯한 건축사의 설계비에 대한 인식을 좀 더 자연스러운 것, 투자할 가치가 있는 것으로 인식을 바꾸어 나갈 수 있을까.
내 고민에 대한 답을 열심히 찾아가며 일하다 보면 미래의 젊은 건축사들은 조금은 덜 고민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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